(빌 3:12~14)

지구촌에는 몇 세기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재앙이 와서 온 세상의 질서를 뒤바꿔 놓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이에 따른 우울, 공포, 스트레스도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코로나 블루’, ‘코로나 번아웃’ 등으로 표현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금년에는 항우울증 처방을 받는 사람의 수가 전년 대비 25%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2020년은 자살률과 이혼율은 높아지고 결혼율과 출산율은 최저인 우울한 한 해로 기록될듯 싶습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이란 힘들다고 낙심해도 안되고 성취했다고 자만에 빠져도 안됩니다. 실패했다고 절망해도 안되고 성공했다고 오만해져도 안됩니다. 주님을 향해 걷던 길 그대로 걸어야 하고 가던 길 그대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대망의 내일을 바라보면서 신앙의 걸음을 옮겨야 할 우리의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지난날의 실패, 쓰라림, 분노, 증오, 다툼, 펜데믹, 성공, 기쁨은 다 잊어버리십시다. 왜 그런 것들을 잊어버려야 합니까? 실패나 분노, 증오나 쓰라림을 생각하다보면 그 아픔 때문에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전진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반대로 지나간 날의 성공이나 기쁨에만 도취되어 있다보면 그 교만심 때문에 보다 향상하고 발전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지나간 날 잘 한 것이 있다면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성공한 일이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실패의 쓴 잔을 마신 일이 있다면 과감하게 실패의 망령을 떨쳐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는 일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베테랑 어부인 베드로가 밤새도록 허탕치고 빈 그물을 올리고 있을 때 “다시 그물을 던져보라”는 주님의 말씀에 선뜻 “알겠습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다시 던져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만일 그때 베드로가 지난밤의 헛수고나 실패의 암시에 빠져서 다시 해본댔자 헛수고라고 포기해 버렸더라면 그는 고기를 잡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공, 실패, 영광, 펜데믹, 우울, 공포, 짜증스러움, 권태, 기쁨, 모든 것을 잊어버리십시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야 합니다
앞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그것을 14절에서 ‘푯대’라고 했습니다. 푯대는 다름질하는 사람이 달려가야 될 결승 지점에 꽂아 놓은 목표물, 혹은 깃발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그 푯대까지 달려가야 상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유의해야 합니다. 

첫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푯대를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뒤를 돌아보아선 안됩니다. 앞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2을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바라보아야 될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바라보고, 예수 믿고, 예수 만나야 합니다.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는 교회와 성도들은 복음의 본질을 회복할 길을 찾아야 합니다.

복음이 살아 움직이는 교회는 코로나19 이후 성장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주저앉고 말 것입니다. 다시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성장의 암적인 존재인 불순물(세속주의, 성공주의, 번영주의, 물질주의 등등)을 떼어 버리고 예수 바라보고, 붙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용기는 막연한 용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께서 주시는 용기입니다. 로빈슨 크루소가 항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파선되고 이름 모를 섬에 상륙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파선된 배에서 몇 가지 물건을 건져낼 수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약 상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약상자를 열다가 그 속에서 제일 좋은 약을 발견했습니다. 그 약은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폈습니다.

그가 펴서 읽은 곳은 시편 50장 15절이었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하여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앞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에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 곁에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 그 주님을 바라보며 고난을 이겨내자는 것입니다. 모두가 힘든 시기입니다. 나보다 남을, 이웃을, 옆의 교인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와 격려가 절실한 때입니다. 

끈기 있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힘 속엔 끈기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고린도후서 4장 8~9절에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의 끈기이고, 기독교의 끈기입니다. 이 끈기는 자연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참 소망을 갖고 사는 자에게서 나오는 영적인 힘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망을 야할(yachal)이라고 합니다. 그 뜻은 일정한 소원을 두고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경 안에는 수를 셀 수 없는 예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은 단 한 가지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실현됐고,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세상 것은 변합니다. 그러나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한 것입니다.

세상 소망 역시 변합니다. 기대도 변하고, 예측도 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신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24절을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라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참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권력, 돈, 명예, 백신, 아름다움 등입니다. 그런 것들은 참 소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실재하는 것이 참 소망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참 소망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뵌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결가족 여러분! 한 해가 저물었습니다. 몇 날만 지나면 이 해가 저물고 새해가 다가옵니다. 참 소망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망각과 희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붙잡기 위해 푯대를 바라보며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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