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높으냐, 천황이 높으냐? 

김정호 목사가 석방된 다음 날, 1943년 6월 1일부터 정 장로에게 심문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담임목사만 오면 석방한다더니 그때부터 잔혹하게 고문하며 심문을 시작했다. 

“예수가 높으냐? 천황이 높으냐?” 

“예수는 하나님이신데 세상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 몸을 입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시어 40일 후에 승천하시고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시어 죄악 세상을 심판하시고 천년왕국을 세우실 만왕의 왕이시고, 천황은 일본제국을 통치하는 일본의 지존한 분으로 알고 있소.” 

“예수는 어느 때 오는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르오” “예수가 다시 오면 천황이 심판을 받는가?” “이 세상에 임금들이 받는다고 했으니, 천황도 죄가 있으면 받소” “예수가 다시 와서 왕국을 세우는 그 세상의 정치 경제 문화는 어떤 것인가?” “예루살렘에 중앙정부가 수립되어 정의의 정치를 할 것이며 열국이 다 순복하고 1000년 동안 평화의 시대가 되어 칼을 쳐서 낫을 만들고 창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전쟁 없는 시대가 될 것이고. 지질이 회복되어 생산이 풍부하고 식물의 저주가 풀리고 동물의 악성이 변화되어 인생의 수명도 회복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부할 것이요.” 

나리다 형사는 노발대발했다. 당시 이런 진술은 천황에 대한 불경죄와 치안 유지위반죄, 군법위반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형사들은 정태희 장로의 옷을 벗기고 손과 발을 묶어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 빙빙 돌리며 가죽끈으로 온몸에 멍이 들도록 후려치며 “예수가 높으냐, 천황이 높으냐?”며 정 장로를 밤이 깊도록 고문했다.

“천황폐하에 대한 불경한 언행을 사죄하고 예수 안 믿겠다고 약속하면 석방하겠다” 정 장로가 잔혹한 고문으로 졸도하면 양동이의 물을 끼얹어 정신이 들게 한 후 “이놈아, 예수가 높은가 천황이 높은가?”고 사납게 다그쳤다.  

“예수 믿지 않겠다고 맹세하라 그래야만 석방하겠다” 사정없이 매질하며 발길로 차며 고문을 계속했다. 정 장로는 “내 목숨이 붙어있는 한, 한 번도 나를 버리지 않는 예수를 믿지 않을 수 없소!” 하며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끝내 굽히지 않으니 정태희 장로와 지면이 있는 한 경찰 간부가 생명이 귀중하지 않은가? 자기 앞에서만 예수 안 믿겠다고 하면 비밀을 지켜 주고 석방하도록 주선할 터이니, 석방된 후에 다시 믿으면 될 게 아닌가? 하고 친절한 언사로 회유했지만, 정 장로의 신앙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러자 나리다 형사가 나타나 “네 놈은 살아서 나갈 생각 말라”고 고함쳤다. 

나리다 형사의 고문이 더욱 잔혹했다. 잠을 재우지 않고 60일 동안 고문을 계속했다. 1943년 8월 5일 수감된 지 70일 되는 날에 정 장로가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메자 석방했다. 정 장로의 몰골은 처참했다.

70일 동안 끔찍한 고문에 시달려 쇠약해진 몸이라 회복되지 않았다. 석방 후 며칠이 못 되어 노모의 수발을 받으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33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자의 반열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정태희 장로는 임종이 가까웠을 때, 가족을 모아 비장하게 유언했다. “우리 모두 예수 잘 믿고 천국에서 만나자! 내가 죽은 후에 내 무덤을 만들지 말고 묘비도 세우지 말라. 내 무덤을 만든들 누가 관리하겠느냐? 화장하여 군산앞바다에 뿌려달라”라고 했다.

유족들은 그의 유언대로 화장하여 그의 유해를 군산 앞바다에 뿌렸다. 예수 잘 믿고 교회에 충성을 다해 봉사하면 복 받는다고 하는데, 정태희 장로의 경우는 예수 잘 믿고 교회 봉사도 잘하다가 패가망신했다고 조롱당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정태희 장로는 신앙생활이나 교회 봉사에 충성을 다하였기에 나이 30세에 장로 장립을 받았고 3년간이나 충실히 봉사하다가 순교의 희생제물이 된 것이다. 그는 믿음의 승리자이며 성결교회의 자랑이며 민족정기의 승리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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