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5~17)

        김주헌 목사         (북교동교회)
        김주헌 목사         (북교동교회)

어느 날 어떤 임금님이 식사하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음식이 너무 맛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방장을 불렀습니다. “이 사람아, 어떻게 하면 그렇게 솜씨가 좋은가?” 주방장이 대답합니다.

“전하 그것은 제가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고, 오늘 가게 주인이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임금님이 가게 주인을 불러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좋은 물건을 팔았느냐고” 그러자 가게 주인이 말합니다.

“전하, 농사를 지은 것을 가져다가 파는 것이지 제 공로가 아닙니다.” 그래서 또 임금님이 농부를 데려다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농사를 잘 지었느냐고.” 그러자 농부가 말합니다. “저는 농사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햇빛 주시고, 단비 주시고 만 가지 은혜를 주셔서 거둔 것입니다. 저는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감사’
오늘 우리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항상 일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시고 건강하게 하시고 오가는 길, 사고 없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 이것이 지혜요 믿음입니다. 또 가장 훌륭한 인격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언제나 감사할 것을 신·구약 성경에서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왜 생겼습니까? 감사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감사하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감사의 보자기에 각종 하나님의 은혜를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년에 3차례씩 절기를 지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잊을 만하면 저들은 예루살렘에 올라와 절기를 지켰습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앞으로 뭐가 잘 되려고 교회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은혜가 너무 감사하고 나를 구속해 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여기 나온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을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쉬운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감사할 일이든 불평할 일이든 기쁜 일이든 괴로운 일이든, 무슨 일이든지 무조건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좋으며 자신에게도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감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은 무엇입니까? 바로 평강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감사하는 만큼 우리의 마음에 평강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메튜 헨리 목사가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매치기는 지갑을 훔쳐 갔지만 내 생명은 훔쳐 가지 못한다. 더구나 내가 남의 것을 훔치지 않고 당했기에 더욱 감사하다”라고 일기장에 기록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음악가인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노년이 되어 시력을 잃었을 때의 일화입니다.

그가 눈 수술을 받고 드디어 회복되던 날 눈에서 붕대를 풀었을 때, 자녀들이 “아버지, 뭔가 보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바흐는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다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 앞에 가족들은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러나 바흐는 오히려 가족들을 위로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가 작곡한 찬송가 145장 3절을 보면, “나 무슨 말로 주께 다 감사드리랴 끝없는 주의 사랑 한없이 고마워 보잘것없는 나를 주의 것 삼으사 주님만 사랑하며 나 살게 하소서”라는 고백입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자에게는 평강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위로자가 됩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성도의 감사는 다 있어서, 좋아서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의 감사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죽을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도 뒤따라오는, 추적하는 죄악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를 주시고, 사망과 저주에서 우리를 건져주신 그 은혜가 우리 성도들의 감사의 샘이요, 뿌리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없어도 이 하나 때문에 감사하고, 어디 가서도 이 하나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감사의 삶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20). “...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아테스’라는 분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던 하나님께 감사하면 마귀가 발을 붙일 자리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마귀는 늘 불만을 느끼는 그 마음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어와서 마음이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지니 몸이 무너지고, 몸이 무너지니까 사업도, 가정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찾아가지만 감사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마귀가 넘어뜨릴 능력이 없습니다.

겸손함이 있습니다
마음이 겸손한 사람일수록 작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며, 겸손한 마음을 가질수록 감사한 일들이 보여지고 감사가 깨달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남편과 풍족한 삶을 누리면서도 늘 불평하며 사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 병들어 누워 지내는 남편과 살면서도 그 남편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여 오래 살아달라고 기도하는 여인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겸손과 교만입니다. 마음이 교만해지면 감사의 마음이 없어집니다. 대신에 원망과 불평이 많아집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몸이 어떻게 움직여지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우리의 심장은 하루에 자그마치 10만 3,689번을 뜁니다. 몸속의 혈액은 놀랍게도 하루에 1억 6,800만 마일을 달립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루에 23,040번 숨을 쉽니다.

우리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생각조차 하지 않아도 심장은 뛰어주고 폐가 호흡을 해주기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 생명을 지으시고 유지해주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감사의 수준으로 그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빙점」의 작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우라 아야꼬 여사는 반평생을 폐결핵, 척추카리에스, 습진, 파킨슨병, 암 등 갖가지 질병을 앓았지만, 고난 속에서도 위대한 작품을 발표해냈습니다. 

그중에 ‘아프지 않으면’이란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 할 말씀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보이지 못할 거룩한 얼굴이 있다. 아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 없다.”

그녀에게 이런 아픔이 있었기에 기도가 있고, 노래가 있고, 신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픔 속에서 영광스러운 작품들이 나왔고, 그의 작품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이 되기도 했습니다.

가장 좋은 언어는 감사라고 합니다. 열 살까지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는 7,000개 정도이고 성인이 되면 2만5,000개의 단어를 우리가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제아무리 많은 단어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감사하다”라는 말 한마디를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최고의 웅변가가 되고 명연설가가 되고 학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감사’라는 말을 안 하면 그 심령은 죽은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이제부터 남은 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며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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