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신교는 폭력과 방화를 양산하는 종교가 아닌 화합의 종교로 거듭나라. (중략) 개신교단 지도자와 목회자들은 신자들의 이 같은 반사회적 폭력행위가 교리에 위배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공표해 신자들을 올바로 인도해야 할 책무가 있다. (하략)” 지난 2일, 대한불교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가 위원장 도심 명의로 발표한 성명서의 한 부분이다. 이 성명서의 준열한 꾸짖음 앞에 한국교회는 어떤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 남양주 시에 있는 수진사의 산신각을 불질러 태운 40대의 여인이 경찰조사에서 “신의 계시가 있었다. 할렐루야”라고 증언했다는 보도를 접한 많은 목사들은 ‘그러면 그렇지’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신의 계시’를 가볍게 입술에 담는 여인의 모습에서 정상적인 신앙을 지닌 사람일 수가 없다는 판단을 얻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이 일을 보도한 많은 매체들도 목사들이 안심할 수 있는 이유를 눈치챈 듯 ‘광신도’라는 표현을 주저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 수진사의 산신각에 불을 지른 여인이 정녕 광신도일까. 그 여인의 삶에 대해, 신앙생활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신의 계시가 있었다. 할렐루야” 한마디 만으로 판단한다면, 그 여인은 신의 계시를 받기는 고사하고 ‘계시’라는 말의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에 틀림 없다고 판단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교회엔 ‘계시’라는 말의 신학적 의미를 평신도들에게 제대로 교육하는 교단이 도대체 몇 곳이나 있을까.

▨… 한국교회는, 인류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데이터가 종교가 되는(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시대를 맞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가슴으로 믿으라”는 식의 감성 호소에만 매달리고 있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는가. 우리 성결교회에서도 이성적 신앙(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입술에 담으면 “교회 부흥은 물 건너갔다”는 엄혹한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되는 현실 또한 누가 부인할 수 있는가.

▨… D.본회퍼가 말했다. “교회는 오직 타인을 위해 존재할 때만 교회다.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타인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야 한다(「옥중서간」)” 이제 한국교회는 물어야 한다. 우리는 ‘광신도’에 만족하지 않았는지, 이성적 신앙을 의도적으로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지금의 교회 모습이 또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의 현존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지를….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