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39:15~18)
예루살렘 사람들은 자부심이 가득했다.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살펴보아도 자신들만큼 하나님을 섬기며 믿는 나라와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했다. 예루살렘은 세상의 중심이고, 성전은 우주의 중심이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무너졌다.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고, 성전은 무너졌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포로 신세가 되어 땅끝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묻는다. “너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왜 하나님은 너희를 돕지 않으시는가?” 그러나 이 물음 앞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마지막 과정을 통해서 보여지는 가슴 아픔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몰라서 망했을까? 그들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지 못해서 망했을까? 성경은 결코 그렇치 않다고 대답한다. 예레미야는 진실을 말함으로써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했고, 갇혀 지내야만 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은 예레미야에게 묻는다. “나에게 숨기지 말고 진실을 말해다오”(38:14). 선지자는 진실을 말한다.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이 진실은 시드기야 왕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단지 그들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기 때문에 애써 외면했을 뿐이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는 뼈아픈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가 토해내는 절규 역시 하나님의 소리로 인정했다. 단지 그 진실을 믿지 못할 뿐이었다.
선지자는 또 다른 진실을 요구한다.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진실을 알았으니 그 진실을 따를 수 있는 믿음을 요청하고 있다. 믿음에 대한 요청에 응답하는 것은 왕의 자리를 내려놓는 것이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왕은 믿음의 자리로 나가는 것은 곧 자신이 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더 이상 믿지 못할 것 같다. 그분이 나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차라리 그런 하나님이 없는 것이 낫다.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믿음 없음에 대한 고백이다. 그 결과는 비참하다. 바벨론 군대는 1년 6개월 동안 예루살렘을 포위한다. 그리고 전 국토는 바벨론의 말과 칼날에 의해서 쓰러져 갔다.
마침내 예루살렘도 공성을 포기한다. 바벨론의 칼은 자비심이 없다. 예루살렘은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초토화 되어졌다. 궁궐과 귀족의 집들은 모두 불태워졌다. 우중의 중심인 성전은 비참할 정도로 무너져내렸다.
칼에 의해서 쓰러져 가면서 애타게 하나님을 찾았다. 이들의 외침은 홀로코스트에서 다시 재현이 되었다. “하나님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왜 우리를 돕지 않으십니까?”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피맺힌 절규와 부르짖음이 세상을 뒤덮었다. 하나님 당신은 그것을 바라보시면서 침묵하신다.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도 침묵한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 순간 하나님은 침묵을 깨뜨리신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소리를 가지고 달려간다. 하나님의 소리는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향하지 않았다. 아무도 알려지지 않았던 사람, 구스인 에벳멜렉이라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에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나를 믿었기 때문이다”(렘39: 15~18).
믿음만이 답인가? 그렇다 믿음만이 답이다. 그 믿음은 높음이 아니라 십자가 아래 낮음에서 찾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