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교회 미주지방회 창립과 단독교회당 매입

        류재하 목사
        류재하 목사

안수훈의 생애에서 1973년은 의미 있는 해였다. 그것은 안 목사의 기도대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미주지방회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 해 1월 21일 나성성결교회에서 목사 12명, 장로 1명이 모여 제1회 미주지방회를 개최하여 산파역을 한 안수훈 목사가 제1회 지방회장에 피선되었다. 그리고 그 해 5월 1일에 한국성결교회 제28회 총회에서 총회직할지방회로 인준을 받았다.

신자들이 자나깨나 단독교회당을 세우게 해달라고 기도한 지 6개월 만에 기도의 응답이 왔다.

별로 멀지 않은 한인침례교회가 다른 곳에 대지를 마련하고 건축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안 목사가 듣고 찾아가 건물매입의 뜻을 밝히자, 신청한 몇 교회를 제치고 나성성결교회가 선정되었다.

놀랍게도 나성교회가 중도금 치루기 전 1975년 1월 첫 주일부터 오후 1시에 예배드리도록 배려했다.

나성교회가 지불할 잔금기한은 그 해 9월 말까지로 3개월 동안 잔금 5만달러를 마련해야 했는데 안 목사가 OMS(동양선교회) 본부에서  재정보증을 받아, 잔금도 두 은행융자로 해결되었다. 그래서 1976년 3월에 등기이전까지 마쳤다. 법적으로 나성성결교회의 소유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헌당식과 위임식, 미주성결교회 창립총회 초대 총회장
1978년 4월 9일 이 날은 1970년 11월에 개척한 이후 8년 만에 교회를 장만하고 하나님께 헌당하는 날이며 동시에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케 한 안수훈 목사 위임식의 날이기도 했다.

위임식 후, 계속해서 안 목사의 집례로 제1회 임직식을 거행하여 처음으로 4명의 장로를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1980년 2월 26일 나성성결교회에서 역사적인 미주성결교회 총회가 창립되었다.

이는 1973년 1월에 나성교회에서 제1회 미주성결교회지방회가 조직되어 제8회 지방회까지 이어왔다. 그리고 1979년 미주성결교회 지방회 이사회의 결의로 이날에 역사적인 미주지역 창립총회를 개최한 것이다.

이날 16개 교회 대표로 목사 16명, 장로 4명, 전도사 3명 등 23명의 참석으로 총회가 개회되어, 총회장에 안수훈 목사를 선출했다.

지방회도 그랬지만, 총회도 안목사가 산파 역할을 한 것이다. 이제 종전의 2개지방회에서 4개지방회(LA지방, 서북부지방, 동부지방, 브라질지방)으로 확대, 남미에서 캐나다까지 미주총회가 형성되었다. 

목회학 박사 취득과 「한국성결교회 성장사」 발간
나성성결교회가 꾸준히 성장하자, 안목사는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회는 목회자의 성장만큼 성장한다' 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래서 그는 1979년에 교회성장학으로 유명한 Fuller 신학대학원 목회학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안 목사는 일주일에 2일씩 학교에 가서 배우고 페퍼를 쓰면서 노력한 결과, 1년 6개월 만에 박사 과정을 마치고, 졸업논문을 준비했다.

그는 지도교수와 협의로 '한국성결교회 성장사' 를 쓰기로 한 후,  자료를 위해 한국의 서울신대 도서관, 연세대 도서관, 서울대 도서관 등을 다니며 자료를 찾았다.  그는 한국에서 국학대학 사학과를 졸업했기에 역사적 안목에서 전력을 다해 집필했다.

마침내 탈고한 원고가 한국성결교회 총회본부 출판부에서 한 달 만에 출판되었다. 그는 이 책을 1981년 4월 말에 Fuller 신학대학원에 졸업논문으로 제출했다.

물론 논문 제출용은 영문으로 번역하여 제출한 후, 논문심사위원들의 질의와 심사를 받고 논문이 통과되는 기쁨을 얻었다. 그래서 1981년 6월 13일에 Fuller 신학대학교 졸업식에서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안수훈 목사는 목회학 박사학위(D.Min)를 취득 했다.

이날 친구인 임동선 목사와 허경삼 목사도 논문이 통과되어 같은 날 목회학박사 학위를 함께 받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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