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33살의 여류시인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제목의 시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라는 끝 문장으로 마무리하였다. 그는 이 시집의 후기에서 “진짜 싸워본 자만이 좌절할 수 있고 절망을 얘기할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라고 반문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만신창이가 된 심신으로, 다가오는 봄을 속절없이 맞아야만 하는 이도 있으리라, 내 시도 그런 대책 없음에서 나온 게 아닌지…”라고 스스로 변명을 하고 있다.

총선은 끝났다. 19대 총선의 성적표를 보니, 보수여당은 정책도 희망도 없이 진보적으로 보이는 당명 변경과 ‘비상대책위원회’이란 비정상적이고 한시적 조직을 내세운 변신으로 과반 의석 확보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진보라는 야당은 서울 시장선거 이후 여소야대를 이룰 수 있다는 오만한 확신을 가지고 해묵은 정권 심판론과 차별성 없는 복지론을 재탕하면서 보수적 파벌 싸움에 공천 잡음을 잠재우지 못하더니 야권 연대를 이루었음에도 패배하고 말았다. 교회대출금 이자를 2%로 낮추겠다는 공약을 가장 크게 강조한 기독당은 1.2%의 지지율을 얻는데 그쳐 강제해산을 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나마 18대 총선에서 얻은 2.59%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대로 대선까지” 지지세가 이어지기를 바라는 여당은 약간은 진보한 것처럼 보이는, 그래서 임기 말을 보내는 정권과 차별된 것같이 느끼게 하는 총선전략으로 과반수를 넘어선 안정적 의석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 어리석은 듯 보이고 국민을 이미지 정치로 사로잡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 안정을 원하고 끝까지 믿어보려는 국민의 신뢰와 절묘한 균형감각을 두려워해야 한다. 정말 달라지기를, 정말 변함없기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최대 야당은 거의 공황에 빠진 것처럼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대선주자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많은 악재 속에서도, 그리고 수도권에서의 전폭적인 지지율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지도의 색깔과 넓이에 주눅 들지 말고 그 무게와 감춰진 의미를 깊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2010 지방선거에서, 오만한 공천에 반발한 보수 후보의 대립으로 무참하게 패배했던 여당의 전철을 야당이 그대로 밟았다는 평가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수권정당이 되려면 공격적 심판론보다 먼저 스스로 당내 민주화를 이루어야 하고 계파를 초월한 화합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기독당이 기대한 지지표는 기독교인 이외의 사람들에게 있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 5명 가운데 1명은 개신교인이라는 통계에 기댄 ‘희망사항’으로 출발을 하였겠지만 그리스도의 뜻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하던 기독교 지도자들에 대한 기독교 공동체의 심판이라 할 수도 있는 결과다. 그러나 비록 군소정당에 대한 지지는 초라하지만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당선된 의원 10명 가운데 4명은 기독교인이란 통계는 그리스도인이 정치에서도 빛으로 소금으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정당이란 정권획득이 목적은 아니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대통령을 당선시킨 집권 여당은 국민이 맡겨준 권력으로 자신들이 지지받은 정책을 집행하여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기에 대권은 그것을 향한 목표일뿐이다. 기독당은 교세를 믿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우선 그리스도교의 보편적인 진리에 기초한 정책으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공감을 얻어야 할 것이다.

‘잔치는 끝났다’고 말한 시인은 이제 50이 넘었다. 그는 떠나고 싶고 살기 힘들어하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포기하지 않고 삶을 노래한다. 

“아스팔트 사이 사이 / 겨울나무 헐벗은 가지 위에 / 휘영청 쏟아질 듯 집을 짓는구나 / 내 가슴에 부끄러움을 박으며 / 새들은 오늘도 집을 짓는구나(새들은 아직도…)”

정치인들이여, 위태로운 이 땅에서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집을 짓는 성실한 국민을 잊지 말라. 그들의 눈을 두려워하라. 아니 그들을 사랑하라. 당신들이 아닌 그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며 당신들은 그들의 권한을 위임받은 종들이기에. 그리스도인들이여, 분별하여 비판하고 지지하라. 선거가 끝나도 우리의 일상은 계속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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