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레네! 에이레네로다 “ eivrhvuh”

지금 우리나라는 국회의원 선거로 온통 시끄럽다. 누가 말했던가. “떠들지 않는 것이 정치라고.” 사건과 사건이 이어지면서 선거의 결과를 두고 공방전이 계속되니 백성들은 정말 당선자들이 국가의 종노릇을 제대로 할 것인가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복수나 설욕을 하기 위해서 절치부심(切齒腐心)하는 정치가 아니라, 이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힘을 합쳐 국가의 평화와 사회의 통합을 이루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성서는 바로 이러한 관계의 회복이나 일치, 조화를 말하는 하나의 중요한 개념어를 말하고 있는데, 이른바 “평화”(eivrhvuh)이다. 라틴어는 팍스(pax), 영어는 peace로 번역되는 헬라어 ‘에이레네’는 요한 일서를 제외한 신약성서의 모든 책에 92회나 등장한다. 이 단어는 우리말 성경의 ‘평안’, ‘화평’, ‘평화’, ‘평강’이란 번역 외에도, 안식, 평온, 염려 없음, 일치, 번영, 건강함, 충만함 등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된다.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 에이레네의 개념은 단순히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태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기나긴 전쟁 상태에서의 한 막간, 즉 잠깐이나마 평화가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했다.

그 후 이 단어의 의미가 확장되어 전쟁의 반대, 전쟁이 종결되어 적의가 없는 평화의 때를 의미하였던 것이다. 또한 에이레네를 통해 이 땅에 법과 질서가 유지되는 상태, 땅과 백성을 위한 복이 흘러넘치며 모든 관계가 온전하게 회복된 상태를 뜻했다. 그러므로 에이레네는 하나님과의 화해, 인간과의 화해(조화)뿐만 아니라 만물과의 건강한 화해나 회복을 의미함으로써 전인적인 구원을 상징하는 말이다.

같은 어원이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하고 있다. 신들의 계보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헤시오도스(Hesiodos, BC 700경 그리스의 서사시인)에 따르면 제우스에게는 연인들이 참 많았다. 그 중에서 테미스는 자연의 법과 질서의 여신이었는데, 그녀와 제우스와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이 계절의 여신들인 호라이(horai)이다. 이들 세 자매의 이름은 질서의 여신 에우노미아(Eunomia), 정의의 여신 디케(Dike), 그리고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Eirene)이다. 이들은 올림푸스에서 제우스를 도와 천상의 구름문을 열고 닫으며 계절을 관장했다고 한다.

어떤 학자들은 신약성서의 평화를 이 신화에서 유래된 그리스의 평화 개념인 적대감이 없는 상태나 태도를 뜻하는 말에 그 기원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신약의 에이레네는 구약의 샬롬 신학적 전통 역시 이어 받았음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관계의 평화, 올바른 관계를 맺는 평화는 정의로운 평화를 말한다. 따라서 모든 참된 평화는 정의를 바탕으로 하는 올바른 관계를 내포한다. 하지만 그러한 정의와 평화는 아직 완전하게 도래한 것이 아니다. 완전한 정의와 평화는 종말론적 일수밖에 없다. 그것은 메시야의 재림과 함께 온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사 11:6~16 참조).

또한 에이레네는 평화 조약이나 평화의 타결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평화는 인간의 관계나 삶에 터진 데를 꿰매는 미봉(책)이 아니다. 동시에 어떤 사건이나 사물에 덧대어 보태는 점철(點綴)도 아니다. 평화는 온전한 관계의 회복과 통전적 관계를 지칭하는 개념이니 완전함과 온전함의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예수님 시대에 로마 황제들은 군대의 힘으로 성취한 정치적 에이레네, 즉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전 지중해 세계에 제공했다. 이와는 달리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궁극적으로 온전한 인류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일치와 화평, 그리고 구원이 이루어졌으며(롬 5:1),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회복되었다(롬 14:17, 19; 엡 4:3; 약 3:18; 히 12:14; 롬 14:19).

나아가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온 우주만물을 하나님 자신과 화평케 하셨다(골 1:15-20). 이로써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건강, 질서, 복지, 번영, 구원, 안녕, 회복을 주는 것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평화 혹은 화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부활의 기쁨을 통해 진정한 에이레네를 확인하고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선거를 통하여 국민의 일치와 통합, 그리고 화해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모든 성결인에게 주님의 에이레네(평화, 화평, 평강, 그리고 평안)가 함께 하시기를!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