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오개에서 밝혔듯이(2012.3.24.) 16면의 정례화가 성결교회를 성결교회 되게 하기 위해서, 신앙과 신학의 정수를 더 풍부하게 담으며, 교회와 교단의 소식을 더 소상하게 전하려는 모색이요 모험인 것을 잘 안다. 애정과 관심을 바탕으로 비평적 관점을 제시한다.

우선 16면 정례 발행체제로 들어간 것을 축하한다. 본부 3층 구석진 2평짜리 쪽방에서 추위에 떨며 취재 기사작성과 편집을 종합(?)적으로 진행하던 20여 년 전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첫째, ‘편집권은 파수 되는가’의 문제이다. 교단지는 일정한 양해가 있다. 교단과 총회의 요구와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면에서다. 여기에 성결신문은 한 가지 한계 아닌 한계를 더 가지고 있다. 교단 주도가 아니라 평신도들이 주축이 되어 태어났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기자들의 역량과 평신도 지도자들의 성숙성이 해답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울러 언제든지 불의, 부조리, 불평등, 불균형 문제에 대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제도적인 편집권의 보장이 있어야 한다. 신문사의 규약이나 회칙에 명문화되길 기대한다.

둘째, ‘편집은 균형이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16면은 주간지에서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다. 일반 취재기사와 기획기사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는가. 총회와 교단본부와 개교회의 요구들 사이에도 균형감이 있는가. 단체나 정치력을 지닌 개인들의 거센 요구와 일반 보편적인 기획기사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처리 수용해 지면에 반영할 것인가. 예를 들어 ‘선교’지면이나 ‘목회와 신학’, ‘생활과 문화’ 코너의 경우는 지난 842호(3/3일자)에서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나오나 ‘한권의 책’이나 ‘오피니언’ 지면은 필요에 따라 등장하기도 안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셋째, 소위 ‘섹션 기사를 어떻게 고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말씀과 신앙, 오피니언, 가정과 교육, 선교, 생활과 문화, 목회와 신학, 한권의 책, 교계와 사회, 생활과 문화 등 수없이 많은 섹션이름을 만들어냈다. 섹션을 만들기는 쉽다. 그런데 없애는 것은 비판을 감수해 한다. 어떻게 그 품위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선 깊이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섹션 명칭도 오피니언 같은 일반지 카피성향은 탈피 하는 게 좋다고 보며, 또한 섹션 이름도 제고해보자.

예를 들면 ‘생활과 문화’, ‘목회와 신학’ 등 두 단어를 붙이는 형식이면 모두 그렇게 해봄은 어떨지, 아니면 ‘책 이야기’ ‘문화 이야기’ 등 ‘… 이야기’라는 명칭으로 가든지…. 개인적으로 섹션이 너무 많다고 본다. 한 면을 섹션으로 구성했다고 보는 것은 바른 개념이 아니다. 5단통 광고 빼고, 나머지 지면 중에 연재 한쪽 들어내고 나면 섹션 지면이 너무 적다. 섹션을 고수하더라도 보다 많은 정보제공을 고민해야 한다.

넷째, ‘광고와 기사의 균형은 있는가’의 문제다. 광고를 많이 배치해나가면 운영에는 도움이 되지만 동네전단지로 전락할 것이고, 기사 쪽으로 무게를 두면 기획이나 편집은 의도대로 가겠지만 신문운영에는 차질이 불가피하다.

그런 면에서 광고와 기사의 균형은 필수에 해당한다. 하지만 광고요구가 많아질 경우마다 지면을 늘리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대개 그런 경향이 있었다. 광고에도 질 좋은 정보와 내용이 수반되는데 그렇지 못한 정치광고쯤이라고 한다면 거절이 마땅하다.

끝으로, 서울과 지방, 지방과 지역간, 대형교회와 작은 교회, 명사와 무명인의 균형문제이다. 매주간 기사에 결코 이것저것 제고할 시간과 공간적인 제약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간 계층간 대중소 교회간, 정치와 비정치간 일정한 균형과 배치의 문제에 신경을 써보자. 일반기사라 하더라도 천편일률적인 예배순서 담당자의 나열이라든지 회순이나 회무의 나열은 제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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