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 peirasmsz” (페이라스모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험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시험은 항상 양면성이 있어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부정적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시험에 통과하여 자신이 원하는 목적이나 결과를 성취할 수 있지만, 부정적으로 시험이란 매우 심각한 인생의 좌절을 경험케 할 수도 있다.

신약성서에는 “시험”을 뜻하는 두 종류의 헬라어 단어가 나타난다. 우리말 성경에 이 두 단어가 똑같이 ‘시험하다’로 번역되지만 그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 두 개의 개념이 춘란추국(春蘭秋菊)이여서 구별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 하나는 ‘sokimavzw’(도키마조, 신약성서에 22번 등장)의 시험이 있다. 고전헬라어에서 이 용어는 “분별하다”, “시험하다”, “시험에 합격하다”, “시험하여 인증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인정할 목적으로 시험하는 행위를 말한다.

신약성서에서 이 단어는 어떤 시험이 승리로 입증되는 경우에 늘 사용되었다. 시험을 받아도 그 결과는 그것을 극복하고 승리를 하게 될 것이라는 소망과 기대에 차있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고후 13:5, 엡 5:10, 딤전 3:10, 참조 고전 11:28, 갈 6:4). 그래서 ‘도키마조’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에게 적용되며, 사탄에게는 사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탄은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 시험하는 일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peiravzw’(페이라조, 신약성서에 38번 등장)의 시험이 있는데, “시험하다”, “의도적으로 시험해 보다”, “죄를 짓도록 유혹하다”, “시험하여 미혹에 빠뜨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그 명사는 ‘peirasmsz’(페이라스모스, 신약 21번 등장)이다. 전자와는 달리 이 용어는 부정적인 의미, 즉 어떤 사람을 좌절시키고 실패하게 만들려는 의도나 기대를 가지고 시험한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단어는 당연히 사탄의 유혹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peiravzw)는 것이 마귀의 유혹이었던 것이다 (마 4:1, 3, 막 1:13, 눅 4:2, 1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시험을 하늘 권능으로 통과하시고 온 인류의 주님이 되셨다.

해마다 3월이면 우리는 교회력으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념하는 이른바 사순절의 거룩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사순절 기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하고 싶은 욕구를 절제하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시간들을 갖는다. 그럴 때마다 사탄은 예수님과 더 가까이 교통하려는 우리의 신앙을 단절시키기 위해서 달콤한 유혹으로 우리를 시험한다. 사탄으로부터 오는 시험은 매우 매력적이며 우리의 삶과 신앙 의지를 실패하게 만드는 유혹이다. 그 목적은 당연히 우리가 악을 행하도록 이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 또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성장 과정인 것이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왕안석(1021~1086)은 이런 시를 읊었다. 牆角數枝梅(장각수지매)/ 凌寒獨自開(능한독자개)/ 遙知不是雪(요지부시설)/ 爲有暗香來(위유암향래). “담 모퉁이의 매화 가지들/ 추위를 이기고 홀로 피었네/ 멀리서도 눈꽃이 아님을 알겠나니/ 그윽한 향기가 풍겨오누나.” 이것은 엄동설한 속에서도 매서운 추위에 굴하지 않고 은은한 향기를 발하며 꽃을 피우는 매화의 절개를 노래한 시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온갖 시험과 유혹을 통해 풍파에 찌들린 우리에게 실패와 좌절을 안겨주려고 할지언정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고고한 자태는 늘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무엇을 기도하면서, 무엇을 절제하면서, 또 무엇을 다짐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는가? 매번 찾아오는 시험과 유혹들 앞에서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을 추스르고 옛날 신앙의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육식을 피하거나 내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과 경건한 마음으로 이 시기를 보내면 좋겠다. 또한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이라고 했다. “매화는 일생을 추위에 떨며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무리 어려운 ‘페이라스모스’(시험)가 닥쳐온다 하여도 그리스도인의 고귀한 향기는 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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