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전도: 신분의 벽을 넘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화, 문명화, 근대화가 그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교사들은 기독교의 개척자일 뿐 아니라 문명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개인 구원의 영역을 넘어 사회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복음을 통한 문화 변혁의 기수가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의 기독교 수용과 정착 그리고 발전 과정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래서 역사학자 이능화(李能和])는 “한국개신교는 재래의 악습관을 개변시켰고 민족정신을 개조시켰는데, 그 주요한 것을 열거하면 음사(陰祀)의 폐기, 계급의 파제(破除), 여성의 지위 향상, 근로정신, 혼상례(婚喪禮)의 종간(從簡), 민주주의 사상의 도입 등이라"(‘조선기독교 급 외교사’, 201)고 역설했다.
이런 양상은 기독교 수용 당시 한국사회의 특수성에 기인하고 있다. 이미 한국 땅에는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소리 없이 꿈틀대고 있었다. 낯선 외국에서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인 한국인 선각자들이 성경을 가지고 들어와 유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기독교의 복음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의 개척 선교사들은 교육과 의료에서부터 그 사역을 시작해야 했다. 여기서 한국의 문명화와 근대화는 복음화와 운명과 같은 실타래로 엮이게 되었고, 이후 문명화와 근대화의 도구들은 한국 복음화의 강력한 통로가 되었다.
외견상 비록 문명화의 개척자로 내한했지만, 선교사들은 복음화의 고삐를 놓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한국 복음화의 출구를 찾았고, 한국인들이 바로 그 열쇠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교육선교사의 기수, H. 언더우드가 선교본부에 알렸던 새문안교회의 창립(1887.9.27) 소식에는 이런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조선 교인들이 한 사람 한 사람 꾸준히 늘고 있고 사업도 날로 번창해 가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순수 기독교 사업에 모든 시간을 바쳤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와서 세례 지원자들에게 문답하고 세례를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 곳은 동쪽에도 있고, 서쪽, 북쪽, 남쪽도 있습니다."
그의 말에서 한국인들의 뜨거운 전도열을 가늠하게 해 준다. 이미 한국인들에 의해 복음화가 역동적으로 진척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복음화는 주로 한국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민족 복음화에 대한 한국인의 열정은 “조선인이 조선인에게 전도하는데 왜 서양인이 월급을 주느냐"며 거절했던 한 전도자의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처음부터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의 이런 열정을 복음화 사역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 결과 한국의 복음화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척될 수 있었고, 이미 1889년에 “오늘날의 한국은 근대 선교의 또 하나의 기적"(MRW, 4, 1889)이라고 세계교회가 주목할 정도였다.
복음화에 대한 한국인의 열정은 신분의 벽을 넘어서게 했다. 왕손(王孫)의 마부(馬夫)로 일했던 엄씨 성을 가진 한영수(장로직의 전신)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사례이다. 마부 엄씨가 하루는 왕손을 모시고 지방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왕손과 조용한 시간을 갖게 되자, 엄씨는 이를 전도의 기회로 삼고 조심스럽게 왕손에게 말을 건넸다.
“나으리, 예수 믿으시면 좋습니다. 예수 믿으시지요?"/ (빈정거리며) “그래 예수 믿으면 너 같은 상놈이 양반이라도 된단 말이냐?"/ (침착하게) “나으리, 예수님을 믿는 도리(道理)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마부 노릇을 더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엄씨를 비천한 마부로만 생각했던 왕손은 내색은 안했지만 충격을 받았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왕손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노니"라고 천명했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알았기 때문이다. 엄씨가 비천한 마부이면서도 왕손에게 당당히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왕손의 신분보다 그의 가련한 영혼을 볼 수 있던 눈이 엄 영수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전도를 외치는 한국교회여, 그 연유가 어디에 있는가? 영혼을 향한 영수의 눈과 자세가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