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전 아내를 사별하고 기초생활 보장 급여와 고물행상으로 시각장애인 아버지와 지적장애아인 세 딸을 돌보는 남자(최인규·44세)가 있다. 막내인 아들에게만 장애가 없다. 큰 딸은 장애가 심해 요양시설에 보냈고, 지능지수(IQ) 70정도인 두 딸과 장님인 아버지만은 끝까지 지키려 하였다. 그러나 두 딸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자 그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 청렴·정직·성실·근면하기로 이름났던 한 공무원이 있었다. 그 공무원은 상당한 지위에 있었지만 봉급만으로는 가족을 먹여 살릴 길이 없고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들 딸을 보다 못해 자살했다. 그 공무원이 아들에게 유서를 남겼다. “너희들은 결코 정직·성실·청렴하지 말고, 잔인·혹독·비양심·사기술·교활해야 한다. 너희들이 나같은 인생의 패배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아비의 간절한 호소이다.”(이영희·‘우상과 이성’)

▨… “공부가 적어서 깊이는 모르지만, 중세 신학자들 가운데는 이 불평등의 관계를 신의(神意)에 의한 ‘인간사회질서’로 합리화하고 축복마저 한 분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네”(이영희·‘우상과 이성’). 이영희는 어쩌면 가진 자 편에 서 있으면서 그 행위를 인간사회질서 유지의 문제로 합리화시키는 역사의 교회들에 대해 몹시도 심기가 불편했었나 보다.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이 진실 추구임을 밝힌 그였기에 두루뭉수리로 넘어갈 수는 없었기도 하겠지만.

▨… 이영희의 시선에 다소의 편견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역사의 교회들이 가난한 자들의 편에 제대로 서있지 못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의 천국’을 말씀하셨지만, 역사의 교회는 ‘마음이 가난한 자의 천국’만 설교하기에 급급했었다. 그 전통이 유독 한국에서 또 우리 교단에서만 영롱한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최인규씨는 딸의 ‘스키’에서 희망을 찾았고 이영희의 공무원은 자신의 삶을 부인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았다. 어디에도 교회는 없었다. 오늘의 교회는 자신의 주린 배 걱정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였던가. “역사에 기록된 가장 가증스럽고 잔혹한 범죄들은 종교나 그와 동등하게 고상한 동기들의 비호 아래 저질러진 것이다”라고 갈파한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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