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부여해주신 가장 큰 목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그를 영화롭게 함보다는 인간의 욕구충족을 위한 삶이 아닌가 싶다.
이 땅에 수많은 종교가운데 우리 기독교는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빛으로 오신 구세주 예수 그분을 믿는 구원의 종교다.

그래서 기독교는 빛의 종교이며 그분의 섭리를 영위해가고 있으며 교회는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고 성화시키며 성도의 영적 성장을 도모하므로 가정과 사회생활을 빛 되게 살며 하나님의 의를 형성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교회 정치의 개념도 질서와 계율을 진작시켜 기독인의 품격을 견지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충하여 사회에 희망을 주는데 그 의가 있다 할 것이다. 역사가 토인비는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절망 속에 있다 할지라도 아직 희망은 있다. 그 희망이 바로 교회다’라고 했다. 교회가 사회에 희망이기 위해서는 종교지도자들이 교회의 본질을 회복시키는데 앞장서고 교회가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

오늘에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떤가? 규범적 가치가 실종된 상태다. 교회 지도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진리를 수반한 의로움보다는 목전의 이익과 직권의 오용으로 참가치를 실종시키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옛말에 물동이를 이고는 하늘을 볼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지도자가 세속의 욕망을 가지고는 그 가치를 빛낼 수 없다. 지도자는 도덕적 양심이 청결할 때만이 그 길이 빛난다. 죠지 뮬러는 지도자의 가슴속에 단 1%의 욕망도 남아 있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세상이 교회가 되지 않은 채 교회가 세상이 되어 버리면 그 사회는 망한다고 하며, 교회가 사회를 외면한 채 사는 지나친 청교도주의는 지양되어야 하며 사회 속에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회퍼의 말이다. 기독교의 참가치는 변화(중생) 된 모습으로 그 삶의 본이 되며 필요에 따라서는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희생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것만이 기독교의 참가치가 있는 것이다. 있으나 마나하거나 빛바랜 요란한 구호에 그친다면 맛 잃은 소금이 아니고 무엇이랴….

성경은 너희는 세상의 빛으로 사람들에게 비취고, 선한 생활을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했으며 바울은 빛의 열매를 선과 의와 진실이라고 했다. 쯔빙글리와 칼빈은 한 목소리로 외치길 ‘교회가 사회에 정의를 실현할 수 없는 종교는 더 이상의 교회일 수 없다며 각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을 성실이 수행하여 하나님과 이웃에게 봉사하고 개성을 실현하는데 있으며 신부나 목회자가 제일이 아니라 만민의 평등함과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의 나나를 실현하는 것’이라 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라 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한 사람의 지도자가 위대한 성업을 남긴 것을 보았는가 하면 반면에 한 사람의 그릇된 위상이 낳은 슬픔도 보아왔다. ‘빈이무첨(貧而無諂)하며 부의무교(富而無驕)하라’ 즉 빈천하더라도 비굴하거나 아첨하지 말며 부귀하더라도 교만하지 말라는 말이다. 또한 지도자는 선한 약자에 교만하지 말고 강자에게 비굴하지 말라는 뜻이다.

지도자는 우선의 적은 이득과 갈등 앞에 방황하거나 자기에 부여된 영적 권위가 상실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이제 교회는 말없이 지역사회에서 봉사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신앙과 덕성의 겸비로 삶을 향유하고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 임하도록 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뜻이 하늘에서 이룸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함과 같다. 교회는 미래와 내세를 심어주고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교회의 윤리적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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