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리가 불편했습니다. 그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2000년 북한에 가서 김정일을 만나 6.15 공동 선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일부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만남을 통일의 여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통일의 태양은 떠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창세기 33장에서 남북한 두 정상이 만나는 것 같은 또 다른 모습을 봅니다. 한 쪽은 적에게 20년 한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400명 군사를 매복시켜 놓고 강 건너에서 다가오고 있는 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쪽은 20년 동안 떠나있던 고향에 돌아가려고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강을 건너면 고향입니다. 그런데 적이 매복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합니다. 그리하여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습니다. 그러면 이 적은 누구인가? 쌍둥이 형제입니다. 강 저쪽은 형 에서, 강 이 쪽은 동생 야곱. 동생 야곱은 지난밤에 하나님이 보낸 천사에게 한 대 얻어맞고 다리를 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만난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해후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창 33:3~4) 제가 화가라면 이 장면을 한번 그리고 싶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회개에 감동을 받아 그린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는가?
야곱은 20년 전에 향의 칼을 피해 고향을 떠나 하란 땅 외삼촌 집에서 머슴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20년 동안 재산을 많이 모았습니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장가도 갔습니다. 아내를 넷이나 얻었습니다. 자녀도 많이 낳았습니다. 그런데 외삼촌 라반의 생각에 야곱을 그대로 자기 집에 더 두었다가는 자기 재산을 다 털릴 것 같으니까 야곱을 집에서 쫓아냅니다.
야곱은 갈 곳이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죽음의 위험 부담을 안고 귀향길에 오릅니다. 가족, 종, 가축을 다 데리고 얍복 강가에까지 왔습니다. 야곱은 강 건너 형 에서의 동향이 궁금해서 종들을 정탐군으로 보내어 알아보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정탐을 다녀온 종들이 보고합니다. “형이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주인을 죽인다고 산에 매복하고 있습니다.”
그는 작전을 짭니다. 가족, 종들, 가축을 먼저 다 보내고 혼자 남습니다. 형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선물을 따로 준비합니다. 그리고 3일 밤을 경야하면서 기도하며 생각합니다. 나는 누군가? 무엇하며 살아왔는가? 후회가 막급합니다. 이렇게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왔나? 욕심만 부리면서, 남을 속이면서, 살아온 자기의 지난날들이 그의 양심을 괴롭게 합니다. 형의 약점을 이용해서 장자의 명분을 도적질하고 눈먼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것, 형과 20년간 원수를 맺고 살아온 것, 외삼촌을 속여가며 악착같이 재산 모은 것을 회개합니다. 눈물이 쏟아집니다.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형과 화해하고 화목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회개요 다짐이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감동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에게 복을 주고 싶었습니다. 천사를 보냅니다. 야곱이 천사를 붙잡고 복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야곱이 달라고 하는 복은 무엇인가? 우선 목숨을 건지는 것, 욕심 안 부리고 형과 화목하며 고향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 그것이 그가 추구하는 복이었습니다. 생명, 평화, 소통, 그것이 복이었습니다. 그 복을 달라고 천사를 놓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내려칩니다. 관절이 위골 됩니다. 허벅지 관절은 남자의 허리와 연관이 되어 있고 남자의 힘을 상징하고 남자의 성적 기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천사가 그 뼈를 박살낸 것입니다. 야곱의 옛사람, 그의 간사함, 욕심, 꾀, 약삭빠른 그의 인간적인 계략과 거짓을 부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서 야곱을 손보신 것입니다.
그 증표가 첫째, 이름을 바꾸어 주신 일입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둘째, 길을 떠나는 야곱 앞에 해를 떠올려 보내 주신 일입니다. 그리하여 본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리를 절은 것은 민주화에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군사 독재의 박해를 받은 처절한 흔적이지만 야곱이 다리를 절은 것은 자신이 변화되기 위하여 천사와 싸우다가 하나님이 손보신 거룩한 흔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야곱에게 엄청난 복을 또 약속하십니다.
첫째, 창 35:11에 “야곱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오고 열왕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많은 국민이 야곱의 부서진 허리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그 약속대로 이스라엘의 12지파, 그 나라 백성이 야곱의 부서진 허리에서 나왔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이 야곱의 부서진 허리에서 나왔습니다. 특히 그 허리에서 솔로몬과 다윗이 나왔고 예수 그리스도까지 나오셨습니다.
둘째, 20년 원수 형 에서와 드디어 화해하게 됩니다. 참으로 감격스런 해후요, 아름답고 극적인 화해의 장면입니다. 야곱은 자기를 받아준 에서가 너무 고마워서 그를 쳐다봅니다. 그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 같습니다. 그리하여 창 33;10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보니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20년 전 생명과도 같은 장자의 명분을 도둑맞고 그래서 동생을 죽이려고 20년 동안 한을 품은 형 에서, 400명 군대를 매복시켜 놓고 동생이 강을 건너기만 하면 죽이려고 벼르고 있는 에서가 어떻게 그 마음이 바뀌어져서 동생을 용서합니까? 어떻게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던 그 흉악한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 같이 바뀝니까? 이럴 수도 있는 것입니까? 누가 한 것입니까? 야곱에게서 감동을 받으신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제는 야곱의 큰 문제가 풀렸고 오히려 형통함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러면 그동안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야곱이 탐욕, 사기, 거짓, 가식, 그것을 회개하지 못한 것,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버리고 생명, 평화, 소통을 선택하자 죽음의 위기도 극복이 되었고 많은 국민과 열왕이 그 허리에서 나오게 되었고 20년 한을 품은 형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길이 형통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은혜를 주시려고 야곱이 다리를 절게 하셨고 아침을 맞은 야곱의 앞길에 돋는 해를 상징적으로 떠올려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결 가족 여러분, 그리고 정치하시는 분들, 그리고 교회 지도자 여러분
새해에는 여러분 개인의 앞길에도 돋는 해가 떠오르고 여러분이 속한 교회와 기관, 단체들에도 해가 떠오르며 우리나라의 앞길에도 돋는 해가 떠오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허벅지 관절이 부서지는 일, 탐욕, 사기, 거짓, 위선, 가식을 버리는 일입니다. 묵은해와 함께 모든 옛사람의 누더기 옷 다 벗어던지고 새 해 들어 새사람의 옷을 입고 출발하면 좋겠습니다.
한국교회는 뼈를 깎는 아픔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야곱이 저지른 것 같은 죄들, 한국교회 안에 가득합니다. 한기총의 모습을 보면 한국교회의 축소판인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가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해 한국에는 총선 때 좋은 크리스천 국회의원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좋은 대통령이 나올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많은 하늘나라 국민이 그 허리에서 나올 것이고, 남북이 서로 끌어안고 눈물 흘리는 통일의 해도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한반도의 통일,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한국교회에게 달려있습니다. 한반도의 앞길에 하나님이 떠올려 보내시는 돋는 해가 솟아오르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