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마 5:9)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화평이 없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BC 200년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 있는데 춘추전국시대에 키가 크고 힘이 세고 미남형인 항우라는 사람이 일어나서 서초대왕(西楚大王)이라고 스스로 왕관을 쓰고 중국을 통일시키려 하였으나 그로 말미암아 중국 동서남북에서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서 무법천지의 세상으로 변하고 백성들은 굶어죽고 전쟁으로 서로 살육하니 눈물바다요, 절망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때에 중국의 시골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농민의 아들, 키도 작고 왜소한 유방이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외모도 외소하고 학식은 없어도 마음이 바다같이 넓고 생각이 깊어서 화평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중국 전국의 동서남북 지역을 여러 날 걸려 순방한 후 북쪽사람 한신 장군을 불러서 화친하였으며, 서쪽사람 소하 장군을 불러서 화친하였으며, 동쪽사람 조창을 불러서 화친하고 의형제를 맺고, 태어난 날은 서로 다를지라도 죽는 날은 똑같은 장소, 똑같은 시간에 죽자고 의형제 결의를 하였습니다.
서로 양보하고 화친하여 형제를 맺고, 중국 나라를 절망에서 건져내기로 다짐하였습니다. 그네들은 유방을 중심하여 3년 만에 넓은 땅 중국을 통일시키고 최초로 중국을 하나로 만들어 한(漢) 나라로 칭하고 유방은 태조왕이 되여, 화평, 포용, 화친, 평등한 나라로 만들어 역사의 큰 교훈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솔로몬 왕, 다윗 왕 같은 인물도 필요하지만 도리어 남을 용서하고 끌어안는 요셉, 호세아 같은 인물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현님들의 죄를 용서하고, 끌어안은 요셉의 화친의 사람, 아내 고멜의 죄를 용서하고 끌어안은 호세아의 화친의 사람, 적군병사들을 치료해 주고 용서한 적십자의 나이팅게일의 화친의 사람, 자기를 칼로 죽이려는 친구를 용서하고 끌어안은 성 프랜시스의 화친의 사람, 부흥회 때 받은 사례금을 시골목회자에게 나누어 주고 끌어안고 기도해 준 이성봉 목사 같은 화목의 사람, 학교 기숙사 학생들에게 월급으로 학기금을 도와주고 끌어안고 울던 이명직 목사 같은 화친의 사람은 어디 갔을까?
정치 잘하는 인물, 설교 잘하는 인물, 골프 잘 치는 인물도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요셉, 호세아, 나이팅게일 성 프랜시스, 이성봉, 이명직 목사님같이 화평을 만드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우리 앞에 놓인 시대상황은 소망을 갖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총선과 대선이라는 선거 상황 속에서 전개되는 정치적 갈등, 유럽 경제위기 등으로 인한 암울한 경제의 전망, 김정일 사후 남북 대치 상황과 북핵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혼란스럽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망의 사람들, 그리스도인입니다. 시대가 어둡고 암울할 지라도 소망을 품고, 소망을 말하고, 소망을 바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유대 백성들은 애굽 노예상황에서 학대를 당하고 구원자를 부르짖었으며 바벨론의 강변에서 시온을 기억하며 눈물을 흘렸고 압제와 식민의 땅에서 회복시켜 주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 중에 인내하며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이 소망을 버렸다면 애굽의 장자를 치신 하나님의 구원을,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의 여정을 통해 성전을 보수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렸던 그 감격을, 메시아의 오심과 부활과 새 예루살렘의 소망을 마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소망으로 인내하는 사람들에게 소망의 하나님은 모든 기쁨과 평강을 충만케 하실 것임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암울함 속에서도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더욱 넘쳐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 소망의 하나님을 우리는 부여잡아야 합니다. 새해 소망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올 한해 성결 가족 모두 화평을 만들고 소망을 일구는 한 해를 만들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