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1:28~30)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산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문화 자체를 눈치문화라고도 말하는 사람이 있다. 요즈음 우리들 주변에도 겉치레를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고급차를 사고, 유명 메이커 옷을 입고, 명품 가방을 든다.
얼마 전에 읽은 책 중 작가 서영은 씨가 쓴 산티아고 순례기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 작가 자신이 순례를 하기 위해서 싼 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짐이 무거워진 이유는 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의식하는 내 생각에 있었다. ‘고상하게' ‘멋스럽게' ‘깔끔하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얼른 다시금 짐을 꾸렸고, 그래서 가볍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짐도 막상 길을 걸어가다 보니 무거워서 더 많은 것을 버리게 된 것을 보았다.
그렇다. 우린 항상 이렇게 남을 의식하면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을 의식함 없이 막 살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나의 삶이 아닌 자신만의 고상한 삶을 살자는 것이다. 대부분 이렇게 남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자존감이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약한 부분을 감추기 위해서 큰 소리를 치기도 하고, 허세를 부리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명품으로 자신을 과대포장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속이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음에도 말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자신감이 없는 삶이 되고, 공허한 삶이 되어서 때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우리들의 현실을 너무도 잘 아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신 까닭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신 것이다. 복음성가에서도 “짐이 무거우냐? 홀로 지고 가기에…"라는 것이 있다. 우릴 부르셔서 그 짐을 내려놓으라고 하신다. 더 이상 그런 짐을 지고 괴로워 하면서, 힘겨워 하면서 살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 가운데 풍성한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보다 내가 진 짐이 무엇인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내가 이제까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가진 것이 무엇인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버리자. 분명 그것 없어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서 힘들어 하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것이 직분이든지, 물질이든지, 아님 명예이든지 버릴 것은 용감하게 버리자.
11세기에 티벳트에 살던 아티샤는 “샘내지 않고, 비교하지 않는 일이 용감한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 불랙홀 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자기 속을 들여다 보려면 빠져죽을 각오로 강해져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니까 진실보다는 거짓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우리들이 우상화하고 있는 사람들의 거짓을 벗겨내고 진실을 보게 된다면 아마도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짐도 지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에 대해서 아무런 의무도 책임도 안 지려는 태도로 발전하기가 쉽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짐을 가볍게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짐을 벗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께로 가기 전에 진 짐은 모두 주님께 맡길 짐이다. 그리고 예수님과 동행한 뒤에 지게 되는 짐은 오히려 세상 전체와 맞먹는 무거운 짐도 기꺼이 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삶이 될 때 비로소 우린 예수님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