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 12월, 5000명이 넘는 누더기 떼의 죄수들이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 호수를 지나 야쿠츠크 제303수용소까지 눈보라 속을 행진하고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래요.” 그때 뒤쪽 멀리서 가느다랗게 물결치며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차차 높아지며 죄수 모두를 삼켰다. 그것은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에 울려퍼지는 힘찬 남성합창이었다.

▨…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지친 남자들. 무릎까지 쌓인 눈밭도 행군을 어렵게 했지만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눈보라의 추위는 차라리 저들로 하여금 죽음의 평안을 염원하게 해주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울려퍼진 남성합창, 그것은 안으로만 삼켰던 저들의 희망의 폭발이었다. 폴란드, 러시아, 핀란드, 등의 언어로 이뤄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캐럴이었다.(S.라비치·얼어붙은 눈물)

▨… 크리스마스 절기가 되면 비신앙인이든 신앙인이든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가난해도 성탄의 축복이 사람들의 가슴에 넘치던 때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금년에는 성탄의 계절임에도 크리스마스 캐럴이 전혀 들려오지를 않는다. 김정일의 예상치 못한 사망 탓(?)이라고는 하지만 마침내는 애기봉을 비롯한 여러 곳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점등마저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 성탄은 조용해야 한다. 경건한 예배의 축하가 좋다. 지난 시절의 성탄처럼 난장판이 되는 것은 결코 바림직하지 않다. 그러나 다시 한번 짚어보자. 전국민의 명절 이었던 성탄일이 서울시청 앞에 홀로 불을 밝히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끝나버리는 현상은 언제부터 빚어졌는지를… 이 땅의 산야와 도심을 가득 채운 연등에 비해서 자꾸만 스러져가는 성탄의 불빛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 “…(전략) 재림하지 마소서, 그리고 용서하소서, 신도보다 잘사는 목회자를 용서하시고, 사회보다 잘사는 교회를 용서하시고, 제자보다 잘사는 학자를 용서하시고, 독자보다 배부른 시인을 용서하시고, 백성보다 살쪄있는 지배자를 용서하소서.(고정희·야훼님전상서) 교회가 정녕 이 시대의 희망일 수 있는가를 묻는 시인의 절규에 이제는 귀 기울여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 성탄엔 자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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