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17~24)
우리는 예수님의 족보에 속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가문에 속한 백성들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어느 가문에 속했느냐에 따라 귀족이 되고 평민이 되며 양반이 되고 상놈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마땅한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감싸서 우리 안에 넣으시고 먹이시며 돌보고 계십니다. 여기서 순종하고 잘 만들어진 후 가문을 빛내는 귀한 백성으로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쫓겨나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할까봐,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당합니다. 그리고 21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에덴동산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내 보여 좋을 것이 없음을 아시고 옷을 입혀서(감추어서) 내보냅니다. 이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독일 출신인 유명한 신학자 본 회퍼가 쓴 ‘옥중서간’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고칠 수 없는 것은 감추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걸 최초로 해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인간을 이해하고 처세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십시오. 깨끗한 집과 더러운 집이라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깨끗한 집은 더럽고 지저분한 것을 치워 보이지 않게 하고 물건들을 정돈하여 깨끗하고 더러운 집은 그 반대이기에 더러운 것입니다.
깨끗한 집은 쓰레기가 없고 더러운 집은 쓰레기가 있는데, 그러나 깨끗한 집은 정말 쓰레기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거기에도 쓰레기는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깨끗한 집이란 쓰레기가 쓰레기 통 속에 들어가 있고 물건들이 잘 정돈 된 집이고 더러운 집이란 쓰레기가 널려 있고 물건들이 흐트러져 있는 집인 것입니다.
겉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몸을 자주 씻고 옷을 자주 세탁하여 입고 사는 사람을 깨끗한 사람이라고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더러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온갖 것을 다 배에 집어넣습니다. 그것들이 안보여서 천만 다행이지 보이면 어떻겠습니까? 감추어져 있기에 깨끗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다 보이면 서로 싫어하여, 사람 사는 세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속사람으로 넘어가 봅니다. 신앙인이란 마음속에 다시는 죄악 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그 생각을 눌러야 되는 사람이며 악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악한 생각을 행위로까지 옮기지 않는 사람일 뿐입니다.
쓰레기통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쓰레기통입니다. 그곳에는 온갖 더러운 것을 담게 됩니다. 그렇다고 불평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쓰레기통을 다 까놓아 버리면 쓰레기통으로서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고 세상은 더러워서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은 쓰레기일망정 겉은 아름답게 해 놓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안에 쓰레기가 있을지라도 아름답게 가꿔가야 됩니다. 되는대로 다 내놓고 살게 되면 세상은 더러워서 살 수가 없게 됩니다.
실제 생활로 들어가 봅니다. 사람을 뒤에서 욕하는 것과 앞에서 욕하는 것 어느 쪽이 더 나쁩니까? 앞에서 욕하는 것이 훨씬 나쁩니다. 그러나 뒤에서 욕하면 치사하게 뒤에서 욕했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뒤에서 하는 것은 그나마 예의를 지킨 것입니다. 앞에서 욕을 하는 것은 싸우자는 것입니다. 뒤에서 욕한 것은 싸우지는 않겠다는 자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남이 뒤에서 흉보는 것은 용납해야 합니다. 우리도 남을 뒤에서 흉보아야 간신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고 그런 면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마음을 넓혀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정말 엄청난 것을 요구합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고 왼편 뺨도 돌려대고, 원수를 위해 축복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요구를 거의 해내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의 실력은 조그마한 일에도 참거나 용서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요구하는 수준까지 가야 합니다.
사랑과 용서의 마음은 그리 쉽게 생기지 않습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치명적 실수들을 경험해서 고쳐 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속마음에 더러움과 더러운 유혹을 받습니다. 그것이 없어서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 아래 묻어서(감추어서) 성결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