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을 맛보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맛보려 하지 마라. 모든 것을 얻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얻으려 하지마라. 모든 것이 되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되려고 하지 마라. 모든 것을 알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마라. 맛보지 못한 것에 다다르려면, 맛없는 거기를 거쳐서 가라. … (중략) 너 있지 않은 것에 다다르려면, 너 있지 않은 데를 거쳐서 가라. (십자가의 성 요한·최민순 역)

▨… 십자가의 성 요한(St. John of the Cross, 1542~1591)은 오늘의 시대에서도 영성이 충만했던 그리스도인으로 기억되어지는 진정한 신앙인으로 손꼽힌다. 그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는 말씀을 평생토록 실천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영성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었고 그에게는 십자가라는 이름이 붙었다.

▨… 우리 성결교단 모든 목사들에게 십자가 없는 영성,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영성이 가능한가를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나는 내가 져야 하는 십자가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일까. 요도(妖刀) 무라마사(그 칼은 누구든지 살의를 갖게 만든다는 전설의 일본도)처럼 바라만 보아도 십자가가 영성을 치솟게 해준다면 교단이 이런 꼴은 아닐텐데….

▨… ‘채근담’에는 “군자가 되어 선(善)을 속인다면, 그것은 소인이 악을 함부로 행함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성령의 바람이 불기를 구하는 사람들이 자기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묻지도 않는다면 그는 비록 은 서른 냥에 스승을 판 가룟 유다는 아닐지라도 선을 속이는 군자와 다를 것이 없다. 성령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에게만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 교단 안에 루머가 난무한다. 황색신문이 흘린 유언비어가 낙엽처럼 쓸어내고 쓸어내도 끝이 없다. 교단을 세상법정에 세우는 일이 벌어지더니 지난날들의 재정을 철저하게 감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묻지도 않는 사태는 이제 종결되어야 한다. 교단을 이끌어가는 이들에게는 명예와 함께 책임도 뒤따름을 교단지도부가 알고 있다고 믿고 싶다. 교단 혼란의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교단 지도부의 자기 십자가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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