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복음을 만나다

경성성서학원 교사 낙성 기념 전도집회에 참여한 천세광은 신학생과 교인들의 참 기쁨에 가득 차 찬송을 부르며 간증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자신은 염세주의에 빠져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한 채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데 똑같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자신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서 뭔가 불변의 진리에 사로잡혀 숨김없고 자신 있는 삶을 살아가는 교인들의 모습 속에서 다른 세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명헌 목사의 설교도 그러했지만 교인들의 순수하고도 진실 된 모습, 그리고 40일 기도회를 마친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의 열정있는 찬양 속에서 그 생명력을 느꼈다. 죽음만을 생각하던 그에게 생명을 확인시켜주는 종교였다. 이 생명의 종교를 통해 ‘조국광복’이란 현실적인 과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나를 구할 수 있는 생명력이 있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천세광은 당시 많은 민족 지사들과 마찬가지로 구국의 방편으로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는 그동안 신봉해왔던 불교, 유교와 결별하고 기독교에 헌신을 다짐하고 아현교회를 출석했고 자신이 발견한 이 사실을 학교 친구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친구들 가운데 그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된 경우도 많았다.

다시 1년 후 성서학원에서 전국교역자 수양회가 열렸다. 일본에 있던 선교사가 와서 집회를 인도했다. 집회 중에 4개 교회합동으로 침례로 행하는 세례식이 거행되었는데 그때 천세광도 전성운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세례를 받는 순간 하늘로부터 “너는 나를 위하여 싸우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그와 함께 하늘로부터 성신의 검을 받아 쥐는 환상을 체험했다. 너무나 생생하고 분명한 음성이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치켜들고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영문을 모른 채 “아멘!”하고 화답했다.

 “악마와 싸우라!”는 하나님의 음성과 성신의 검을 받아 쥔 그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때 양정고보에서 일본인교사 배척운동이 일어나고 수업도 제대로 되지 않아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일본유학의 승낙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장손이 십 수 년을 외국에 나가겠다는 계획을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고향에 교회를 세우고자 친척, 친구들을 50여 호 일일이 방문하며 전도를 했다.

그 결과 믿겠다는 사람이 5~60여명이나 달했음에도 집안의 강력한 반대로 교회를 세우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고향 가까운 곳에 조양학원 사립학교 교사로 근무했고 1년 후에는 군위 근일학원 교무주임으로 자리를 옮겼다. 젊고 민족의식이 뚜렷한 그는 학생에게 존경받는 교사가 되었다.

그는 군위성결교회에 집사, 전도회장,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면서 교회의 주동인물로 활약했다. 그의 주동으로 새교회당 건축과 여전도사 청빙을 위한 40일 특별집회를 열었다. 40일 특별집회 중 30일이 지난 어느 새벽, 천세광이 사회를 보며 설교하고 기도하려할 때였다. 예수님과 니고데모 사이에 진행된 중생에 관한 대화(요 3:18)가 생생하게 들려지며 강한 바람이 휘몰아 그의 전신을 감쌌다.

의연한 자세와 근엄한 어투로 기도하던 그가 갑자기 자세를 흐트러뜨리며 방성대곡했다. 어려서부터 누구보다 양심적이고 윤리도덕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그였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부끄러운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천길만길 지옥에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온 몸을 떨면서 통회자복하고 눈물 흘리며 대성통곡했다.

1시간가량 몸부림치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통회 자복할 때에 하늘로부터 “너는 내 아들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하고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라는 찬송을 부르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교회당에서 나오니 동녘에 솟아오르는 태양은 그가 신생한 자임을 축하 하는 듯하고 참 평안과 기쁨 만족함을 형언할 수 없었다. 이로써 천세광은 그 중생의 체험을 하고 참된 평안과 기쁨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는 윤리적 자책감에서 해방되었고 공허했던 삶이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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