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한 어느 이름 없는 목사가 몇몇 후배 목사들의 초청을 받았다. 설렁탕 한 그릇을 비우는 자리에서 노(老) 목사가 우스갯소리를 흘렸다. “정승댁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넘쳐나도 정승이 죽으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젊은 목사가 받았다. “목사님이 무슨 정승이세요? 이름조차 별로 없으시면서…” 예닐곱의 목사들이 모두 하하거리며 웃었다. 주변의 시선이 모두 저들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무한경쟁을 부추겨 경쟁사회(competition society)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사람(G. Harkness)이 있었다. 인간사회의 본질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파악하려 했던 이(T. Hobbes)도 있었다. 그 탓일까. 목사들의 사회도 그 경쟁(무엇을 위한 것일까?)의 치열함 때문에 인간의 냄새가 차츰 사라지고 있다. 비인간화하고 있다면 지나칠지도 모르지만 삭막해져 가고 있음만은 사실이다.

▨… 개척할 힘(자금)도 없고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교회도 없다. 졸업은 코앞인데 오라는 데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신학생들의 처지는 아무도 아랑곳하지를 않는다. 20대의 태반이 백수이고(이태백), 사오정(40, 50세에 정년을 맞은)이 넘쳐나고, 많은 젊은이들은 88만원 세대임을 자조해야 하는 이 사회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만 구하는 신학생의 비애는 삼류 유행가처럼 차라리 구슬프다.

▨… 우리 교단에서 매년 은퇴하는 목사의 수만큼만 목사 안수를 계획할 수는 없는가. 우리 교단에서 꼭 필요하고 일터를 제공할 수 있는 목사의 수를 가늠해서 신학생 수를 조정할 수는 없는가. 성령의 바람이 불어주기만을 구하는 교단발전대책은 교단 성장침체의 원인까지도 하나님께 돌리는 무대책은 아닐지 이제는 진지하게 검토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 언제부터인가, 목사들도 무한 경쟁의 생리에 젖어들었다. 승리자는 영광을 얻고 패배자는 그대로 잊혀져야 했다. 부총회장 선거, 총무 선거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면 억지일까. 은퇴한 목사들은 소모품으로 잊혀지고 젊은 수도자들은 문을 나서면서 스러져버리는 교단 풍토에서 우리가 구하는 성령의 바람은 비인간화를 감추려는 의도를 가진 것인가, 아니면 교단까지도 사회법정에 세우려는 신앙의 타락을 가리우려는 몸짓에서 비롯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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