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꽃소식은 제주에서 올라오고, 가을 단풍은 강원도 설악으로부터 물들어 내려온다. 그 고운 채색이 이곳 월악산을 지나 이제는 아마도 아랫녁 내장산을 물들이고 있으리라. 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단풍은 날씨가 추워지면서 이파리안에 갖고 있는 안토시안 등 색소성분의 변화작용으로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무는 다년생이나 단풍이 생기는 활엽수 잎은 1년생, 그것도 봄에서 가을까지만 존재한다. 나무를 모체로 해서 생겨난 이파리는 짧은 일생동안 탄소동화작용으로 영양분을 만들어 본체인 나무에 부지런히 공급하고, 추워진 날씨에 나무로 하여금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가지에 열결된 떨켜를 퇴화시켜 희생하는 것이다. 야구경기에서 팀을 위해 자기의 희생을 선택하는 타격을 ‘희생플라이 아웃’이라고 한다. 타자는 아웃되지만 팀주자는 1루를 전진한다. 단풍이파리는 꼭 그와 같다.    

아무런 색채의 존재감도 없는 태양빛 안에 일곱빛깔이 내재되어있음은 무릇 평범한 신비이다. 프리즘과 무지개를 통해 보는 세상은 무지개빛의 화려한 색채로 가득 차 있는 환상의 세계이다. 그 색채의 미학이 피조물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음을 토마토에서, 오이와 가지에서, 사과와 단감에서 그리고 이제 가을 단풍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초록 잎이 생명의 상징이라면 노랗고 빨간 단풍잎은 아름다움의 표상이다. 어린 새순이 어린아이의 천진한 웃음이라면 말년의 단풍은 깊은 연륜의 은빛머리의 영광이다. 

단풍을 보면 십자가 예수님 생각이 절로 난다. 짧은 공생애의 끝자락을 붉디 붉게 물들인 십자가의 사랑. 서산으로 지는 해가 아름다운 노을로 물드는 것은 하루의 성무(聖務)를 마치는 피조물을 향한 축하와 격려의 세레모니이자 예수십자가의 원형을 보여 주는 계시적 퍼포먼스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나무에서 났으되 나무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낙엽, 참된 아름다움과 사랑을 바람결에 노래하는 그대 단풍을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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