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를 통해 교회 성장을 바라는가?설교는 교회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회 부흥을 위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마련한다고 해도 설교가 회중을 사로잡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설교로 은혜 받은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지만 말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프로그램은 회중에게 일종의 강제적인 동원이자 노역이다. 따라서 진정 프로그램을 통해 성도의 성숙과 교회의 성장을 이루려 한다면 설교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의 해결은 성경으로부터 깊이 있는 메시지를 추출하는 성경적 설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성경을 파면 팔수록 무궁무진한 보고가 거기 숨겨져 있다. 설교 본문은 장식처럼 걸어둔 채 시사적, 윤리 도덕적, 개인적 이야기들로 설교를 대치하려는 시도는 설교자 스스로 설교를 포기하는 것이다!

설교는 궁극적으로 희망과 긍정을 말해야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희망의 원천이시기에 회중들에게 무력감을 던져주는 설교는 곤란하다.

특히 부흥이 정체되고 교인이 적은 경우 설교자들은 무력감과 좌절 속에서 설교 준비도 소홀하게 되고 가족 같다는 미명하에 규범 없는 자유함으로 흐르기 쉬운데 이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규모가 작을수록 설교자는 더욱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예배와 설교의 분위기가 경직되지 않되 질서가 잘 잡혀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당신이 설교를 통해 사람을 모이게 하려면 들을만한 내용이 있어야 함과 동시에 듣는 재미를 주어야 한다. 적어도 한편의 설교를 들으면서 두 세 번씩은 얼굴에 웃음과 가슴에 뭉클함을 주는 감성적 터치가 일어나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미명(?)하에 답을 만들어 놓고 강요하는 식의 일방적 설교는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방적이고 주입적인 뻔한 설교는 당장 중지되어야 한다.

영적으로 무장되어 어떻게 말해도 흡수되는 극소수만을 위한 설교로는 더 이상 승부가 안 된다. 설교자는 성도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함께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자가 먼저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문을 파고들어야 하며 회중에게 당연한 교훈 일변도가 아닌 생각을 자극하는 문제를 던져주어야 한다.

흔히 설교자들은 회중들이 일주일동안 복잡한 세계에서 살다왔기 때문에 생각하게 하는 설교보다는 쉬운 설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설교자들이 말하는 쉬운 설교가 깊이와 생각의 자극을 결여할 때 회중들에게는 ‘유치한 설교’ ‘뻔한 설교’로 들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쉬운 설교는 뻔한 설교도 유치한 설교도 아니다. 깊이와 감동이 있는 설교내용, 논리적인 짜임새, 사람을 빨아들이는 전달력, 영혼을 움켜쥐는 영력. 이 네가지 요소야말로 설교를 통해 교회를 성장시키고 다양한 목회프로그램이 전정 제자리를 찾게 하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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