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0:1~4)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무슨 근거로 바울 사도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는 결론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일까. 쉽게 생각해보면 구름은 광야 40년 동안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심을 말하는 것이리라. 바다를 육지같이 건넘은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세례받음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기록되었고 ‘그렇구나’라는 깨달음을 가능케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구름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 40년은 구름과 바다의 연속이었으니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세례를 행하셨음을 말씀할 수 있을 것이다. 40년은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볼 때 그야말로 반평생이니 삶으로 볼 수 있다. 세상의 삶이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하심으로 통치될 때, 우리의 삶은 다른 세상 속에 있으며 매순간 하나님과 소통하는 영적 삶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신령한 음식을 먹고 신령한 물로 생명을 유지하였다는 이야기는 모세의 인도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로 삶을 영위(출 16장)하고 마라의 쓴 물을 나무로 달게 하여 먹이고 반석에서 흘러나온 물(17장)로 삶을 건졌음을 의미한다.

본문에서 우리가 유심히 볼 부분이 ‘모세에게 속하여’, ‘반석은 곧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인도자 모세가 있었고 여호와는 밤낮으로 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재우심으로 육의 삶을 채우사 위로하시며 영의 삶을 이끄신다.

'만나를 먹음'의 법칙으로 안식일의 경배를 익히게 하사 영의 예배와 순종을 드려 하나님과 백성됨의 하나님 나라를 계시하셨다. 아브람이 홀로 가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하는 매일의 여정이었다면, 모세는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가는 구원의 리사이클이다.

반석이신 그리스도는 의미로 해석된 그리스도가 아니라, 가시적 피조공간에서 반석이 갈라져 물이 솟아 백성이 생명을 이어갈 때, 영도 동시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령한 물을 마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자인 모세의 속하여 가나안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고린도 교인)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령한 음식을 먹고 신령한 물로 생명을 유지하는 등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며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육이 육으로만 존재하고 영은 따로 영의 존재를 부여받아 삶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연습이 결국 영에게 동시 연단과 성숙이 된다. 바울 사도는 단순히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보고, 반석이 그리스도처럼 의미를 가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육체가 구름 아래로 보호되고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감이, 영이 세례 받고, 반석의 물을 마심이 육의 생명을 받음이며 동시에 영에게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마심이라 말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너는 내 안에 있어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으리라’하심을 따라 매일의 삶 속에 일용할 영의 양식을 보고 마시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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