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트르담의 꼽추’, ‘레미제라블’ 등의 작품으로 세계의 대문호라는 이름을 얻은 빅토르 위고는 83세의 나이로 1885년 5월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자그마치 200만 명의 군중이 모였다. 그 행렬은 파리의 개선문에서 그의 마지막 안식처인 판테온까지 이어졌으며 오전 11시에 시작된 장례식은 거의 저녁 7까지 계속되었다.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거창했었다.

▨… 위고는 당시의 프랑스에서는 ‘국민 시인’이었다. 서정 시인, 소설가, 극작가, 연설가, 정치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변호사로서 그는 언제나 정곡을 찔렀었다. 프랑스 귀족원 의원이면서 공화주의 좌파의 대변인이었던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못말리는 스타’였다. 그러나 그의 삶은 말 그대로 난봉꾼이었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장례식에서 군중들은 ‘위고 만세’를 불렀지만 아무도 그를 존경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 존경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훌륭한 행위나 인격 따위를 높여 공경함”이다. 위고의 문학 작품으로서의 성공은 대문호라는 칭호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의 삶에서 드러나는 인격은 누구에게서도 존경받을만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인류가 영원히 그 문학적 가치와 향기를 간직해야 할 작품의 작가가 조금도 존경받을 만한 구석이 없는 삶을 살았다는 아이러니는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 1970년대 이후 이 땅에서 대교회를 이룩해내므로 목회의 성공(?)이란 말이 보편화할 수 있도록 기여했던 많은 목사님들이 날개를 잃어버린 새처럼 추락하고들 있다. 돈 문제에 얽혀서, 자식에게 대물림하려는 사욕 때문에, 무슨 무슨 회장하려는 명예욕에 짓눌려서 평생을 간직해온 목사라는 이름에 씻어낼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있다.

▨… 목사가 대교회를 이루어낸다는 것과 존경받는 목사가 된다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위대한 영혼을 가진 척 꾸미면서도 자기가 진정으로 위대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실제 행동방식을 보여준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꾸짖은 적이 있다(니코마코스 윤리학). 목사를 향한 존경과 목사의 진실함에는 어떤 관계도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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