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텐의 그 빛깔, 성결인 “anwvqen
그리스도인은 모두 거듭난 성도들인가? 신약성서는 그리스도인이 거듭나야 함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교파를 불문하고 거듭남을 통한 신앙적 변화를 매우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특히 우리 성결교회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이라는 사중복음의 기치 아래 성장한 자랑스러운 교단이다. 그 중에서도 중생(重生) 곧 거듭남을 맨 앞으로 내세운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서 첫 번째 단계의 자리가 바로 중생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거듭남’(regeneration, born again)이라는 말은 달리 표현하면 ‘다시 태어난다’, ‘새로 태어난다’는 뜻이다. 신약성서에서 거듭남의 비밀을 가장 잘 설명한 곳이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 내용이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 3:3)고 말씀하셨다.
본문에서 사용된 ‘거듭난다’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겐나오 아노텐’(gennavw anwvqen)이다. 여기서 ‘겐나오’(gennavw, 신약성서에 97번 등장)는 ‘태어나다’라는 뜻의 동사이며, ‘아노텐’(anwvqen, 신약성서에 13번 등장)은 두 가지 개념, 즉 ‘위로부터’와 ‘다시’를 뜻하는 부사어이다. 그러므로 거듭남이란 이중적 의미를 품고 있는데 하나는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 하나의 단어로 이중적인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기법은 요한복음이 즐겨 쓰는 어법이다.
그렇다면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비결은 무엇인가? 내려오시고(성육신) 올라가신(승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그 신앙을 고백하며 행동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몸짓인 ‘세례’이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결국 거듭났다는 상징적인 행위를 만인에게 보여주고 공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는 속-거듭남이요, 다른 하나는 겉-거듭남이라고 구분 짓는다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로부터 새로 나는 것이며, 위로부터 나는 것인데, 그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내적 신앙과 그 외적 신앙 행위의 상징인 세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결교회의 시조(始祖)에 해당되는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중생 혹은 ‘신생’(新生)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신생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의 타락된 본성을 다시 새롭게 하시는 위대한 역사”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순간, 역시 우리는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게 된다.” 더 나아가서 “신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며, 신생은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악마적인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마음으로 바뀌어 지는 변화”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거듭남은 우리가 회심을 하는 신앙적인 경험과도 맥을 같이 한다. 회심 혹은 회개는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는 것을 말하며 헬라어 원어로는 ‘메타노이아’(metavnoia)라고 한다. 그러므로 거듭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새로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되는 은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은총과 위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분에 대한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누구나 인생에 있어서 훌륭한 종교를 갖는다면 그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이 되어 생각이 깨고 마음이 거듭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명심하라!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혹은 그리스도인이 변화된다는 것은 ‘새 종교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며, 옛 본성이 아니라 새로운 본성으로 재창조되는 것’임을.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을 향해 호흡한다. 그 호흡의 원천은 아노텐(anwvqen) 즉 위로부터 다시 내려올 때 가능하다. 그러한 새로운 호흡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뵙는 그리스도인, 하나님을 알현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가을에 지난해와 다를 것도 없이 단풍놀이를 즐기며 얼마 남지 않은 한 해의 여운을 달래기보다는, 다시 한 번 우리의 속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해서 위로부터 오는 신앙색깔로 물들이는 계기를 가져보면 어떨까. 신앙여정에 색다른 삶의 감각을 맛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