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정치란, 바른 것이라 했다. 곧 나라 다스림을 정의롭게 하는 것이 정치라는 뜻이다. 쏘브리노는 “정의라는 것은 사랑의 실천적 차원인데 그 사랑은 인류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가난한 자, 눌린 자에게 풍성한 삶을 주고 효과적으로 그들에 대한 인간화를 추구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런 사랑은 기독교 정치인의 자질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될 것이다. ‘강도 만난 자(눅 10:30)’를 찾아가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할 의지 없이 기독교인이 정치를 한다면 그것은 한갓 세속 권력에의 탐닉일 뿐이다.
하나님이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하셨으니 고난 받는 국민을 위로하고 구원하기 위한 기독교인의 사회참여는 의무이다. 그러나 교회가 기독교 정당까지 만들어 가지고 세속 정치권력을 추구한다는 것은 정의롭기 어렵고 부정적임이 역사적 교훈이다.
주후 313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됨으로부터 기독교는 권력형, 귀족형으로 변질되어 종의 모습에서 상전의 위세로 바뀌더니 그때의 잔재가 오늘날까지 유전되고 있음인지 한국교회만 보더라도 물량주의·팽창주의·성장주의·권위주의·호화주의·배금주의 교회, 가진자·권력층·지식인 등 신분지향적 교회, 귀족적인 모습의 도시교회 등 모두 성경에 근거한 예수의 정신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난달 20일 개신교 일부 목회자들이 중심이 되어 극우보수 성향의 ‘기독자유민주당’을 창당했다는데 그들은 앞서 ‘기독교 정당 과연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찬성 측은 종북 좌파를 척결하고 세계 최악의 자살률, 이혼율, 저출산 등 사회 붕괴 현상을 막기 위해 기독교 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다.
하지만 공감이 가지 않는다. 한국교회에 시급한 것은 교회갱신이지 정당 창당이 아니다. 앞에서도 한국교회에 대해 말했거니와 제비뽑기를 않고는 금권선거를 막을 수 없는 교회, 대형교회들의 목사세습, 세속 권력 옹호, 고소·고발전으로 세인의 빈축을 사고 있는 작금의 일부 교단과 대형교회, 이런 교회이기에 아직은 깨끗한 정치나 정의로운 사회 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을 만들 자격이 없다.
교회가 사회를 걱정해야 하지만 지금은 도리어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고 있다. 교회는 먼저 자기 변화 없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교회갱신에는 힘쓰지 않고 웬 기독교 정당인가. 기독교인이 정치하는 것은 자유지만 직접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 정치세력화하는 것은 자칫 부패권력화 할 위험이 있고, 또 우리나라 같은 다종교 사회에서 종교 간의 갈등을 유발함으로써 스스로 선교의 지평을 좁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굳이 창당하려면 기독교 정당답게 성서적인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새롭고 신선한 주장이 창당 정신에 담겨 있어야 한다. 진부하고 식상한 이념 논쟁은 부질없다. 유럽의 기독교 정당들 중에도 보수주의는 있으나 극우 성향은 없다고 한다.
역사를 돌아다보건대 8·15 해방 정국에서 배은희 목사(이승만 정부 초대 고시위원장)가 기독교 정당 창당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결국 좌절되고 말았는데 그때 반대측 목사들의 공통된 반론 요지는, 교회에 도전해 오는 세력이 있을 때는 마땅히 응전을 해야 하겠지만 스스로 사회인과의 마찰을 유발할 수 있는 길은 삼가야 하며 정치란, 순수하기 어려우니 교회가 정치에 가담하면 세속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정치란, 순수하기 어렵다는 말에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오늘날도 의식이 깨어 있는 이 땅의 많은 목회자와 평신도의 눈에 비치는 기독교 정당들, 얼마나 순수하게 보일지, 당명에 ‘기독교’라는 이름 석 자만 붙이지 않았으면 뉘라서 말하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