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칼럼

저는 얼마 전 한 주간 몸이 좋지 않아 일주일간을 병원도 다니고, 약도 먹고 하면서 투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하도 기침을 많이 하여서 한 지인의 소개로 한약방을 갔습니다. 한약이 약간 덜 다려져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 한약방을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큰 액자에 ‘삼정성(三精誠)’이라는 글귀가 눈에 띠어 쪽지에 적어왔습니다. ‘삼정성(三精誠)’이라함은 ‘지어주는 정성, 달이는 정성, 먹는 정성’이랍니다. 굉장히 마음에 와 닿는 말입니다.

저는 순간 이 말을 저에게 적용해 보았습니다. 결국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의 최고의 사명은 성도들이 이해 할 수 있는 현대적인 언어로 성경을 정성스럽게 풀어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한약에서 말하는 ‘지어주는 정성’입니다.

그러나 목사가 정성스럽게 한약 짓듯이 말씀을 준비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성스럽게 준비된 말씀에 한약 달이듯 달이는 또 한 번의 정성이 필요합니다. 한약에서 ‘달이는 정성’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목회자의 기도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영혼들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목회자가 기도의 담금질을 할 때 사람들이 변화되고 치유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목회 초년생에 불과한 부족한 목사이나 목회를 하면 할수록 절실히 느끼는 것은 목회는 사람의 힘으로 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한 잡지에 실린 어떤 목사님의 글이 마음에 공감되어 여기에 그 한 대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군대에서 유격 훈련 할 때 줄타기나 장애물 등을 넘기 전에 쪼그려 뛰기를 수백 번씩 하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그 장애물을 통과한다. 그게 실전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회가 바로 이 유격훈련 상황과 같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피곤과 눌림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얼마나 뛰어넘는가가 우리의 목회와 훈련의 성공여부를 결정한다고 할 수가 있다’.

저는 한 주간 투병하면서 마음이 참으로 무거웠습니다. 제 마음과 생각에는 무엇인가 열정이 있는데 제 몸이 따라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성령께서 저에게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나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나 자신을 잊고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더욱 전적으로 의지하자. 더욱 성령님을 나의 목회에 초청하고 의지하고 부르자. 그때 나의 연약한 가운데서도 함께하시고 도우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약할수록 주님은 강하신 것을 다시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약에서 말하는 ‘달이는 정성’입니다.

그리고 ‘먹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목사가 아무리 정성껏 말씀을 준비하고, 기도와 성령의 힘으로 말씀을 달여도 회중들이 정성스럽게 그 말씀을 받아먹지 않는 한 그 약의 효험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체질적으로 한약 먹는 것을 어릴 적부터 싫어하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정성껏 먹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먹는 정성이 있을 때 약의 효과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받아먹는 일과 성경을 공부하는 일에 ‘먹는 정성’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삼정성(三精誠)’ 즉 ‘지어주는 정성, 달이는 정성, 먹는 정성’의 최대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한약에서 말하는 ‘삼정성(三精誠)’을 우리 목회자들과 성도님들께서 신앙생활 속에서 잘 적용하시어 주님 오실 때 까지 에베소교회가 잃어버렸던 그 첫 사랑을 잃어버리지 마시고 순수함과 영적 힘이 있는 값진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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