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양식자(樂羊食子). 위나라의 악양이 중산국을 공격할 때 마침 그의 아들이 중산국에 있었다. 중산국 왕이 그 아들을 인질로 삼아 악양에게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악양이 거절하자 중산국 왕은 그 아들을 죽여 국을 끓여 악양에게 보냈다. 악양은 태연히 그 국을 먹었다. 위나라 왕이 악양의 행동을 칭찬하자 도사찬이 말했다. “자기 자식의 고기를 먹는 사람이 누구인들 먹지 않겠습니까?”

▨… 엔도 슈샤꾸는 12제자 가운데 예수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한 사람은 가룟 유다일런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스승이여 당신은 이상적인 사랑을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란 현실에서는 직접적인 효과가 없지 않습니까. 당신은 불쌍한 사람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려 하지만 불쌍한 사람은 지금의 삼백 데나리온의 돈 쪽을 필요로 하지 않겠습니까” 스승을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도 의문이지만 유다는 현실적 효용성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 도사찬의 한마디에 눈이 열린 것일까. 위 왕 문후는 중산 정벌에서 돌아온 악양에게 후한 상은 내렸지만 그 마음과 인품은 믿지를 않았다. 한비자는 악양식자의 고사를 빗대어 후세인들이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할 말을 남겼다. 교묘한 속임수는 졸렬한 진실만 못하다(교사불여졸성·巧詐不如拙誠).

▨… 소설가는 그 스승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한 제자가 유다일 지도 모른다고 상상했지만 ‘은 서른 냥’ 앞에서 그의 이해는 무너져 내렸다. 유다의 그와 같은 모습을 요한복음은 일찍이‘도적(요12:6)이라고 규정하였다. 돈궤를 맡을 만큼 똑똑하고 계산에 밝았지만 자신을 검속하는데는 이미 실패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욕 때문에 예수의 제자자리에서 곤두박질한 자는 가룟 유다뿐이라고 이 시대의 예수의 제자들은 외쳐댄다. 과연 그럴까.

▨… 한국교회에 무슨 희망이 있느냐는 자조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려퍼지고 있다. 예수께서 한국교회같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느냐는 물음이다. 교단마다 정치놀음, 이권싸움에 박이 터지고 교단기관마다 자리싸움에 영일이 없다. 가진 자들이 돈을 뿌리면 목사, 장로라는 예수의 제자들이 그 직분을 한 순간에 내팽개쳐버린다. 잉카제국의 어느 왕이 내뱉듯 말했었다. “기독교인들이 가는 천국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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