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주최로 열린대화마당이 있었다. 주제는 교단의 선거제도 개혁이었다. 더 좁히면 ‘어떻게 하면 돈 선거를 못하게 할 수 있는가’였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김명용 교수가 주제 발제를 했고, 6개 교단에서 각 교단의 선거제도에 대해 발제했다. 발제 후 좌장을 맡아 대화마당을 진행했다.

대화마당에서 모아진 의견 중 중요한 것 두 가지가 총회대의원 피선의 횟수 제한과 부총회장(또는 총회장) 선거에서 맛디아식(제비뽑기) 방식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연속이든 비연속이든 총회대의원을 3회 하면 1회는 쉬도록 한다. 발제자 김명용 교수가 제안한 것은 3회 하고 3회 쉬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토론 과정에서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대의원들이 자기 권한을 스스로 그렇게 제한하겠느냐는 것이다. 1회 쉬는 것은 애를 쓴다면 각 교단에서 실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1년 쉰다고 해서 당사자들이 구축하는 부정적인 정치 파벌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일반 정치에서, 정치는 원내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원외에서도 정치를 할 수 있다. 교계에서는 대의원이 아니면서도 부정적인 형태로 정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오히려 더 크다. 그래서 1년 정도 갖고는 그리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다.

맛디아식 곧 제비뽑기는 현재 예장 합동에서 실시하고 있다. 대의원의 선거로 2인을 선출한 뒤, 2인을 놓고 제비뽑기를 하는 것이다. 2인보다 3인이 더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2인이면 뽑힐 확률이 50퍼센트인데, 3인으로 하면 33.3퍼센트로 훨씬 낮아지니까 돈을 쓸 상황을 더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역맛디아식도 제안되었다. 입후보자들 가운데 2인을 뽑는 과정을 제비뽑기로 하고, 뽑힌 2인을 놓고 대의원들이 투표를 하는 것이다. 둘 다 괜찮은 방법이다.

(역)맛디아식의 문제점도 지적되었다. 선거에서 떨어지면 그냥 떨어진 것인데, 맛디아식으로 해서 떨어지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게 되어 교회적으로 파장이 크다는 것이다. 신자들이 우리 목사님(장로님)이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별 걱정을 다 한다!’ 신자들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자기 교회 목사님 장로님이 선거 나가면 돈 봉투 돌리는 것, 신자들도 다 안다.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정확한 사회과학적 조사 방법을 동원해서 설문하면 교계 돈 선거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신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주제에 대한 인식이 신자와 비신자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여러 설문 조사를 통해서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그러니까, 교회 지도자들과 일반 신자들 사이에 묘한 눈감아주기가 작동하고 있다. 우리 목사님(장로님)이 스타가 된다면 돈 봉투 정도야 괜찮다는, 하향 평준화된 신앙 상태가 오늘날의 현실이다. 맛디아식으로 해서 떨어질 경우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앙이 순수하다면 오늘날의 교계 선거 현실이 이렇게 되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총회 임원으로 사용하시지 않고 다른 영역에서 섬기게 하시는 것이라고 해석하면 된다. 아주 간단한 문제를 갖고 뭘 ….

좌장으로 토론을 진행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아주 실제적이고 개혁 가능한 것이 있는데, 주제 발제를 비롯한 다른 발제에서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며 말이다. 지방회(또는 노회) 활동에서 거마비(교통비)를 없애는 것, 그리고 지방회 주최의 행사에서 순서 맡은 대가로 돈 봉투 받지 말자는 것이다.

총회 차원 정도 되면 전국적으로 다녀야 하니까 실제적으로 교통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방회는 지역이 넓지 않다. 교통비가 꼭 필요할 정도가 아니다. 우리 교단의 경우 지방회에 따라 상황이 다르겠지만, 교통비로 나가는 돈이 지방회 전체 예산에서 적어도 4분지 1이상일 것이다.

모일 때마다 교통비를 받으니까 두세 번 모여 처리할 문제도 몇 번 더 늘려 모이기도 하는 일이 없지 않다. 인간 사회 어느 집단이든 돈이 많이 모이면 문제가 발생한다. 지방회든 총회든 가능한 범위 안에서 예산을 줄여야 한다. 우리 교단은 상회비가 지나치게 많다.

지방회 주최로 무슨 행사를 할 때 설교를 비롯해서 어떤 순서를 맡든 돈 봉투를 주지 않도록 하면 좋다. 봉사 아닌가! 더구나 누구보다 더 헌신적으로 섬겨야 하는 목사와 장로들 아닌가! 교회를 개척해서 설립예배를 드릴 때 같은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봉투를 받아서 도로 헌금한다고 하기도 하지만, 아예 없는 게 더 좋다.

넓은 의미로 그리고 본질적이며 중립적인 뜻에서 정치는 좋은 말이다. 사람이 모이는 데서 정치가 없이 무슨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주신 당신의 모양과 형상 중에 정치를 말하는 신학자도 있다. 맞는 얘기다. 넓은 의미에서 사람은 정치적인 존재다. 그러나 문제는 ‘부정적 의미의 정치꾼들’이다. 이 말을 내 나름으로 정의해본다.

‘공금 쓰는 맛을 알기 시작하면서 부정적 의미의 정치꾼에 입문하며, 구체적인 조직을 만들어 그 조직을 유지하려고 공개하지 못할 방식으로 돈을 챙기면서 본격적인 정치꾼이 되며, 교단의 인사 및 재정 구조와 제반 행정 흐름을 꿰뚫어보며 각종 부서와 기관에 항구적으로 자기 사람들을 심어놓고 조직을 뒤에서 움직이면서 고수 정치꾼이 되며, 성경에 근거한 거룩한 교회법을 자기 조직의 이익을 위해 이리저리 바꾸는 능력을 갖추면서 정치꾼 9단이 된다.’

교단 원로장로회 수련회에 가서 이 얘기를 했다.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수련회에서 설교하면서 이 얘기를 했다. 여러 상황에서 설교하면서 이 얘기를 하기도 한다. 지방회(노회) 활동에서 교통비 없애는 것과 지방회 주최 행사에서 순서 맡은 사람들에게 돈 봉투 주지 않는 것 말이다. 한국 교회의 갱신을 위해 실제적이고, 가능하고, 시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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