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회 개척을 주도한 강진국 장로

1908년 이기풍 목사가 제주도에 파송된 이후 해방 전까지 제주선교는 장로교가 주도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이후 성결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순복음교회 그리스도교회 등 다양한 교단들이 제주에 설립되었다. 제주에 피난 온 사람들이 다양한 교파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성결교회가 제주에서 시작된 것은 한국전쟁기간에 제주도에 유입된 피난민들에 의해서다. 처음 제주도에 피난 온 성결교회 성도들은 장로교에 흩어져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4후퇴 시에 제주도에 피난 온 성결교인들이 1951년 5월 6일에 제주시 건입동에 천막을 치고 모여 예배드리기 시작했다. 이 때 제주교회 개척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강진국 장로다.

강 장로의 가족은 1951년 2월경에 서귀포 서흥리에 정착했다가 3개월 만에 제주읍내로 이전하였다. 강 장로는 제주건입동 산정에 있는 무당의 신당을 발견하고 신당 구석에서 꿈틀대는 뱀들을 다 잡아 죽이고 무당기구를 다 소각하여 정리한 다음 기거하기 시작했다. 제주 주민들이 강 장로의 대담한 행동에 감탄하면서도 그에게 무슨 재앙이 내리지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들이었다. 강 장로의 신상에 아무런 이상이 피난민들도 그 지역에 하나 둘 천막을 치어 한 동네를 이루게 되었다.

강 장로는 성경과 찬송가 가방을 메고 부인과 함께 기독교의 불모지 같은 제주읍내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강 장로의 부인은 보건소에서 주사기와 페니실린 주사약 등 응급약을 구해서 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환자들을 치료해주었다. 서툰 솜씨지만 이상하게도 주사만 맞으면 완쾌되어 전도의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마침 이성봉 목사가 제주에 방문하여 강 장로는 그와 함께 피난성도들을 일일이 찾아 제주읍내를 거의 한 바퀴 돌며 전도하였더니 큰 성과가 나타났다. 

강 장로는 서귀포훈련소에도 방문하여 훈련병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훈련을 마치고 전방으로 떠나는 장병들의 장도와 평안을 위한 축복기도를 해주었다. 강 장로는 그러한 자발적인 봉사로 훈련소 측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민간인 사역자로 인정을 받아 훈련소를 자유로이 출입하며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때마침 전쟁으로 인해 제주도에 들어온 피난민을 돕기 위해 기독교단체로부터 구호물자가 들어왔다. 제주읍사무소에서는 이를 공정하게 분배해 줄 적임자를 찾던 중에 강 장로의 복음전도 활동을 아는 직원의 천거로 구호물자분배 책임자로 위촉받았다. 강 장로는 난민들에게 구호물자를 공정하게 분배하되 자신의 가정에는 전혀 배분하지 않자 물자를 분배받은 난민들이 조금씩 나눠주어서 그것으로 끼니를 이어가며 늘 청빈하게 지내고 있었다.

제주도는 4·3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결손가정이 많았고 정신이상자와 사귀 들린 사람들이 많았다. 강 장로는 그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열심히 기도해주어 귀신을 쫓아내고 정신이상자들을 치유해줬다. 이 소문이 읍내에 번지면서 사귀 들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장로의 소문을 듣고 피난민 성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자 강 장로는 성결복음의 불모지 제주읍내에 천막을 지어 1951년 봄부터 제주읍내 건입동 1238번지의 빈터 20평에 예배처소를 정하고 80여명의 성도들이 함께 예배드리게 되었다.

OMS의 전도비 지원을 받아 총회에서 파견한 몇 몇 목사와 제주피난교역자들로 축호전도대를 구성, 1951년 8월부터 복음을 듣지 못한 재주민에게 축호전도를 한 결과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전도대원은 강송수 김영구 오태상 정운기 강진국 이복녀 김신빈 이헌영 김성추였다(교단 제7회 총회회의록 14쪽). 이것이 제주성결교회의 모체교회인 제주성결교회의 시작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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