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32:1~15)
위기는 외부에서만 오지 않는다. 걸림돌은 외부에만 있지 않다. 우리 삶에는 자기 안에서부터 비롯되는 위기나 걸림돌이 적잖음을 부인할 수 있을까?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위기나 걸림돌은 곧 잘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발견하기 쉽고, 그에 대해 대응하기도 유리하다. 하지만 자기 안에서 비롯되는 위기나 걸림돌은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자기중심의 성향을 지니기 때문이다.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대로, 자기 생각에 옳다 여기는 대로, 자기감정에 이끌리는 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행동하기 일쑤지 않은가? 그래서 위기인지, 걸림돌인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고, 때로는 다른 이들이 그릇됨을 가려주어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외부의 걸림돌이자 위협이었던 미디안을 1만2000명의 군사만으로 괴멸시킨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향해 한걸음 더 성큼 다가선 기분이었을 것이다. 가나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룬 승리는 가나안을 향한 자신감과 여유로움을 갖기에 넉넉했다. 미디안에게서 거둔 전리품으로 가축의 떼도 상당히 불어났다. 이때 르우벤과 갓 자손들의 눈에 들어온 모압 평지는 자신들의 가축을 치기에 아주 적합한 땅으로 보였다. 그들의 눈에 가득한 초장은 ‘여기가 좋아오니’ 절로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용기를 내 모세와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요청했다.
“우리를 좋게 여기신다면,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차지가 되게 하소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요구일지 모른다. 많은 가축 떼를 가진 그들에게 드넓고 푸른 초장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터전이지 않은가? 하지만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그들은 순간 잊어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지시하심은 그 땅이 아니라 강 건너 저 가나안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눈에 보기 좋은 푸른 초장은 풍요를 약속하는 듯했고, 아름답다 여겨지는 정경은 ‘여기가 좋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더욱이 강 건너까지 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러기에 한층 더 강하게 “우리에게 요단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하고 힘주어 주청했다. 목표를 잊었을 뿐 아니라 이기심마저 발했으니 이를 어찌할까?
주저함 없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주장하는 르우벤과 갓 자손들을 모세는 질책했다.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 하느냐?”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려는 그들, 이기심에 사로잡힌 그들에게서 모세는 지난 날 가데스바네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르우벤과 갓 자손들은 지금 옛적 조상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되풀이 하려 한다. 그때 열 사람의 믿음 없는 보고가 이스라엘을 크게 낙담하게 하지 않았던가.’ 그들의 판단과 결정은 단지 목표상실과 이기심을 너머 불신앙 그 자체가 아닌가? 더 나아가 이스라엘 공동체를 낙심케 하는 행동이 아닌가? 르우벤과 갓 자손들의 요청은 가나안의 문턱에 서 있는 온 이스라엘을 다시 한 번 파멸로 몰아넣는 죄악된 행동이 될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시는 결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모세의 질책은 눈에 보이는대로 행하는 안으로부터의 위기와 걸림돌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함이 가져올 위기와 영적 걸림돌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나는 보이는대로 행하려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지는 않았는가?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으로 인해 내가 속한 공동체를 어려움에 빠뜨리지는 않았는가?
이런 기도를 함께 드리고 싶다. 하나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주장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나,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