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티스마와 새 생명의 신비, “bavptisma”
이번 장마는 여느 해보다도 일찍 시작되었고 이곳저곳에서 물난리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렇듯 물이란 평상시에 우리 실생활에서, 그리고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는 우리 몸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음료이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 너무 많은 물은 인간에게 감당하지 못할 피해를 주고 만다.
사막과도 같은 고대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물이 귀하디귀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선민들은 그 귀한 물로 정결례를 치루기도 하고 손님을 맞이할 때 손과 발을 깨끗이 씻도록 하였다. 고대근동에서 물은 정화와 생명의 상징으로, 새로 태어남과 재생의 의미를 갖는다. 물과 연관하여 유대교나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중요한 성례전이 바로 ‘세례의식’이었다.
어원적으로 세례를 뜻하는 헬라어 bavptisma(밥티스마, 신약성서에 19번 등장)는 ‘담그다’(dip) 혹은 ‘침수하다’(immerse)는 동사 baptivzw(밥티조, 신약성서에 77번 등장)에서 나온 말인데, 원래의 세례는 온몸을 물속에 잠그는 침례(浸禮)예식이었지만 나중에는 단지 씻는 행위 자체에 경건한 의미를 부여하는 의식으로 변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세례는 구약의 정결례(레 15:5, 8, 13, 16; 사 1:16)에서 기원하였다. 1세기 당시의 유대교 역시 율법과 전통에 기록된 ‘Mikvah’(미크바, 목욕의식)라는 거룩한 정결예식에 익숙해 있었다. 예를 들어 유대인이 죽은 시체를 만져서 모세의 율법에 의해 부정하게 되었을 때 Mikvah를 통해서 의식적으로 정결케 된 후에만 비로써 성전예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유대광야에서 집단 종교생활을 했던 쿰란공동체에도 물로 씻는 세례예식이 있었다. 이 종파의 ‘밥티스마’는 종말론적 심판을 준비하는 절차로써 죄를 고백하고 정결을 위해 매일 몸을 씻는 목욕의식이었다. 이와는 달리 당시 정통파 유대교에서는 같은 종족에게 ‘밥티스마’를 베풀지는 않았다. 다만 비유대인이 유대인이 되고자 할 때 입교의 절차로, 혹은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에 개종 세례를 베풀었다.
이방인에게 행하는 이 예식은 이방인을 물 가운데 세우고 율법을 읽어준 후에 축도를 하고 저주스럽고 더러운 이방인의 삶을 깨끗이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그의 전신을 물속에 잠기게 한 후에 올라오게 했다. ‘미크바’라고 부르는 유대교의 이 세례의식은 ‘정화와 회복’이 목적이었다.
세례 요한 역시 광야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그의 세례는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밥티스마”(눅 3:3)였는데, 죄를 회개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세례 요한과 쿰란 종파가 물로 씻는 세례의식인 것은 유사하지만, 요한의 세례는 회개하는 사람의 일생에 단 한번 행해지는 세례였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요한의 세례는 쿰란종파나 정통 유대교와는 달리 회개나 죄사함 등의 근본적인 내면적, 윤리적 변화와 연관시켜 베풀었다. 특히 요한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기 위해서 종말론적인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여기에서 우리는 요한의 세례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약속의 표시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여 물에 담그거나 씻어서 베푸는 거룩한 의식으로 발전시켰다. ‘죄를 씻어줌’, ‘완전히 새롭게 됨’, ‘삶이 온전히 변화됨’ 등의 의미를 나타내는 교회의 밥티스마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서(롬 6:3-5) 그리스도와 연합함(갈 3:26-27)을 상징하는 교회공동체의 입문의식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여름 수련회가 다가오고 있다. 그야말로 교회로서는 가장 바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들로 산으로, 혹은 물가로 갈 때에 물은 생명의 근원이고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는 거듭남을 상징한다는 사실이다. 비록 오늘날 교회가 일반적으로 봄(부활절)과 겨울(성탄절) 1년의 두 차례 정도 세례예식을 거행하지만,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이 세례 받기에 충분하다면 항상 세례를 베푸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수련회에 장마로 인해 넘치는 물 가운데서 새신자를 위한 초대교회의 세례식을 한번 베풀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야말로 모두에게 잊혀지지 않을 축하의 자리가 되지 않겠는가. 세례를 받는 새신자에게 있어서는 새 생명으로 거듭났다는 보다 현실적인 감각적 체험을, 그곳에 동참하는 모든 신자들에게는 자신이 받았던 세례를 다시 기억하고 새로운 마음을 다지는 신앙의 현장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