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36-39

호수를 건너는 예수님 일행을 막아선 것은 미친바람, 광풍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죽겠다며 두려워 떠는데, 예수님은 미친바람, 광풍을 꾸짖어 잔잔하게 합니다(눅8:22). 미친바람, 광풍이 믿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막는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꾸짖어 잔잔케 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살려는 우리를 출세, 성공, 돈 같은 것들이 막아설 때가 많습니다. 특히 현대인은 신(信), 불신(不信)을 떠나 돈을 너무 좋아합니다. 돈 때문에 고민하고, 돈 때문에 행복합니다.

돈이라는 미친바람, 광풍이 교회가 가야할 길을 막고, 목사가 갈 길을 막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꾸짖어 야단쳐서 미친바람, 광풍을 잠재워야 합니다.
돈 때문에 예수님 말씀을 비웃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리새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자 이들은 비웃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은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16:14). 예로부터 지금까지 돈은 사람을 가름하는 척도였고, 돈에 대한 태도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딤전6:10절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근원”이라 말하며, 예수님도 재물과 하나님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눅16:13).

눅5:36~39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지배하는 당시 유대교를 향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새 옷에서 한 조각을 떼어 낡은 옷에 붙이는 사람이 없으며,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동임을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38절은 새 포도주는 당연히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여기서 끝나면 딱 좋을 말씀입니다. 그런데 39절이 있어 괴롭습니다. 39절 때문에 오히려 말씀이 잘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번 읽어봅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도대체 이 말씀이 여기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포도주는 분명 묵은 옛 것이 좋습니다. 옛 포도주는 옛 가르침, 옛날 습관, 옛 전통입니다. 이런 것들이 좋은 것은 편하기 때문입니다. 손에 익어 좋고, 늘 해오던 방식이어서 불편하지 않기에 좋습니다.

하지만, 당연한 것도 고치려니 ‘부담’이고, 새로운 것에 적응하려니 ‘어려움’입니다. 그래서 걸림돌이 됩니다. 정의니 진실이니 하는 것은 마땅하고 옳지만 그렇게 하려면 손해가 따르고 불편하기에 실제론 실천되는 것이 어렵습니다. ‘마땅함과 당연함’의 새 포도주는 ‘편안함과 익숙함’이라는 더 맛있는 묵은 포도주 때문에 이렇게 자주 거부됩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지 못합니다. 39절은 이런 현실을 빗대어 한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습니까? 언제까지 고치는 게 옳지만 관행이라는 묵은 포도주의 좋은 맛(익숙함)에 취해 그대로 두어야 하겠습니까? 끊을 건 과감하게 끊어야 합니다. 지금, 오늘부터 끊어야 합니다. 먹지 말아야 할 떡도 있습니다. 마치 선악과처럼 말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을 ‘먹을 수 없는 돌’을 ‘먹는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하였습니다. 그 사단은 오늘 우리에게도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으라고 유혹합니다. 돈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주라고 합니다. 돈으로 자리를 사고, 돈으로 표를 사서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뱀처럼 유혹합니다. 지혜로우라고 유혹합니다. 먹어도 결코 죽지 않으며 오히려 더 행복해 질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언제까지 묵은 포도주가 좋다하여 새 포도주를 거부하겠습니까?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가 됩시다. “묵은 포도주가 좋다”는 넋두리는 더 이상 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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