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베이아에 힘쓰자! ( euvsevbeia)
“그리스도인은 경건해야 한다” 혹은 “그리스도인은 참 경건하다”라고 말할 때 이 경건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건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런데 다수의 그리스도인은 그 경건이란 성경을 옆에 끼고 모든 공예배는 빠짐없이 참석하고 교회에 헌신과 봉사를 아끼지 않는 것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다. 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니 무엇보다도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경건의 언어적 의미
원래 이러한 경건의 개념은 그리스적 사고에 기원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경건’(euvsevbeia, 유세베이아)이란 “선하고 명예로운 시민생활의 이상을 예증해주는 덕목"이었다. ‘ euvsevbeia’는 “좋은"이라는 뜻(euv)과 “존경하다"(sevbeia)라는 뜻이 합쳐진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경건이라는 말은 존경을 받을 만한 좋은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행위는 경건치 않은 삶(asebeia)이라 말할 수 있겠다. 1세기에 당시 그리스사회에서 널리 애용되고 있는 ‘덕'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명예로운 비문들 가운데서 “경건"이라는 글귀는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데, 이 말은 후에 로마에 대한 충성심을 일컫는 말로 확장되었다.
사도 바울은 이 헬라적 생활 덕목을 받아들여 자신의 서신(書信) 이곳저곳에서 ‘유세베이아’를 언급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러한 삶을 강조하고 있다(딤전 2:2; 3:16; 4:7, 8; 6:3, 5, 6, 11; 딤후 3:5; 딛 1:1). 이 외에 베드로후서(1:3, 6, 7; 3:11)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초대교회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서 이 그리스적 개념을 차용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개념은 나중에 세속적인 덕목들을 초월한 것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갖출 수 있는 신앙 덕목으로 정착된다.
하나님과의 관계성 개념으로 확장
사도 바울은 이방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던 경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참된 삶에 대해서 권고, 설교, 훈계를 하고 있으며, 그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도덕률, 하나님의 능력 혹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발전시킨다. 더 나아가서 그는 경건은 단순히 내면적인 신앙 및 신앙 훈련의 상태만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은 결국 그리스도인의 신앙 실천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경건이라는 것은 내면과 외면을 모두 중시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태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교회에서 경건하다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신비적, 신앙적 내면만 치중하거나, 혹은 도덕적, 윤리적 외면만 그리스도인처럼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내면이 외면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을 텐데, 가식은 금방 들통이 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교회, 더 넓은 의미에서 종교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은 경건의 모양(형식, 그럴 듯한 상식처럼 보이는 가식)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정확하게 본 것이다. 말은 그리스도인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하나님에 대해서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니 하나님에 대해서 공경하는 태도도 보이지 않을 것이요, 선과 덕을 쌓으면서 사회로부터 그 모범이 되어야 하나 세속적 덕목들에 비해서 하등 나을 것이 없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삶으로 드러나야 하는 경건
한 동안 한국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영성’(spirituality)이란 단어를 유행어처럼 입에 달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1~2년 사이에 그 영성이라는 말을 이젠 입에서 떼어 버린 것 같다. 영성이 한국교회의 성장에 도움이나 대안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여 너도나도 도입해보려고 했으리라. 그러나 영성은 살아야 하는 것이지, 어떤 프로그램이나 교회 성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영성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건이라는 말조차도 그리스도인의 신앙 실천과 삶으로 드러나야 하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연습에 연습을 더하여 그리스도의 삶이 내 몸에 꼭 맞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건(euvsevbeia)은 피나는 노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pieta)도 필요한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