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및 한국 찬송 발전에 공헌

이중태 목사는 당대의 부흥강사 신현균 목사의 ‘성령의 바람’이란 설교를 기초로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제목의 음반으로 성가독창을 여러 곡 취입했다. 신 목사의 특징 있는 부흥 설교와 이 목사의 은혜로운 찬송은 교계에 좋은 반향을 일으켰다. 청주육군병원의 간호사들이 그 음반을 다량으로 사주었고 이 목사를 특별 초청해서 직접 불러주어 많은 감동을 끼치기도 했다.

이 목사는 또한 강변교회 선교합창단을 창단했다. 동네 어머니들이 함께 모여 합창을 즐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취지였다. 믿지 않는 어머니들에게도 단원가입을 허락했다. 발성연습을 위해 코르위붕겐(Chorubungen)으로 지도했다. 때로는 특별강사를 초청하여 훈련하면서 음악수준을 높였고, 이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전도가 되었다. 이들은 예배시간에도 찬양을 불렀는데 결국 교회에 등록이 안 된 어머니 전원이 신자가 되었다.

강변선교합창단은 농촌교회공연, 군부대위문, 양로원위문, 초청교회나 기관에서 연주활동을 했다. 이 목사는 강변교회에서 25년간 담임목사로 섬기는 동안 손수 어머니 성가대의 지휘를 맡았으며 선교합창단으로 순회공연도 자주 가졌고 1988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꾸준히 지휘를 했다. 또한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주었고 전도의 매체가 되었다.

이 목사는 악기보내기운동으로 피아노 9대, 오르간 1대를 각각 교회에 보냈다. 단 이 목사는 1967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한국찬송가위원회에서도 봉사했다. 음악위원회에 선출되어 찬송가 가사와 리듬, 음계, 응모한 곡의 선곡, 가사와 곡의 선택, 찬송가 질을 높이는 일 등 전문분야에서 봉사하여 한국교회 찬송가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교계의 신문과 잡지에도 많은 글을 실었다. ‘복음신보’에 “내가 보는 찬송작가”, 월간 ‘신앙세계’에 “찬송가일화”와 “영감의 작곡가들”, 일본성결교단 월간지 ‘희망’에 “찬송가의 노트”를 연재하여 찬송가 속에 숨겨진 신앙이야기를 소개해줬다.

그는 기고한 글을 모아 “찬송가 탄생의 비밀” 책자의 일본어판과 한국판을 발간했다. 그는 “은혜로운 찬송설교”를 출간했는데, 주일오후 ‘찬양예배’ 때 부르는 찬송과 관련된 설교집이다. 그는 “한국교회음악사”, “예배와 교회음악”, “찬송가일화집”, “찬송가이야기100(贊美歌의 物語100-일본판)” 등 교회음악관련 저서와 “여호와는 나의 목자”, “어서 돌아오오”, “복음성가집” 등의 음반을 출간했으며 3회의 독창회와 100여 회의 방송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특히 이 목사는 총회 음악부장을 5년간 역임하면서 교회음악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그는 총회장 임기 중에 “성결의 노래”를 제정 반포했는데 성결교단의 역사와 비전을 표현해주면서 성결인의 긍지와 사명을 일깨우는 교단의 노래가 됐다는 평이다.

이 목사는 은퇴 후에도 더욱 바쁘게 활동했다. 1년의 절반은 외국에서 보냈다. 특히 일본에서는 동경 성서학원(Tokyo Bible Seminary)에서 평일에는 교회음악강의를 하고 주일에는 일본인교회를 순회하면서 설교와 강의를 해왔다. 또한 러시아의 성결신학대학원(Moscow Theological Seminary)에서도 ‘찬송가학’과 ‘교회음악행정’을 강의했다.

이 목사는 한국성결교단의 교회음악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여 교단창립 70주년기념대회에서 음악공로상을 수상했다. 그는 “예배에 나타난 음악의 위치와 의미”라는 논문으로 아세아연합신대학원과 미국의 훌러 신학대학원과의 공동학위과정에서 목회학 박사(D.Min) 학위를 취득했고 미국 미드웨스트 신학대학원에서 명예음악박사학위(D.C.M)를 취득하는 등 교회음악의 탁월한 인재였다. 그는 한국교계의 교회음악과 교단의 교회음악발전사에 길이 기억되어야 할 인물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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