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노래를 듣고 공자가 말했다. “갓끈을 씻거나 발을 씻게 되는 것은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후에 다른 나라가 짓밟는 것이다.”

▨… 한국성결신문, 본지는 한사코 ‘성총회’라는 말을 고집하지만, 사용할 때마다 번번이 낯간지럽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국회를 향하여 ‘민의의 전당’이라고 부를 때 다가오는 자조만큼이나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 속담을 곱씹게 만든다. 자신의 눈곱만한 이익을 챙기려고 “벙어리 발등 앓는 소리”만 내뱉는 사람들의 모임이 성총회라면…. 스스로를 이렇게 모욕해도 되는지, 가슴이 섬쩍지근하다.

▨… 성총회가 폐막된 지 한 달, 그래도 성총회였는지 총회장 직무 인수인계도 이뤄지고 임원회도 열렸다. 그러나 총무 직무 인수인계에서 삐걱대는 불협화음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 총무 이취임예배가 7월 8일에 예정되었다는 소리와 함께 총무 선거결과 불복이라든가 총무 직무정지가처분 신청이라는 비성총회적 낱말도 총회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 “하나의 지식의 형태로서 남과 더불어 사는 삶이 정의이다. 하나의 존재의 형태로서 남과 더불어 사는 삶은 사랑이다”라고 마르틴 부버는 우리가 살아야할 삶의 본질을 밝혀주었었다. 그 부버가 지도자들에게 물었다. “그대가 아직도 그대 자신의 자손을 더 가깝게 생각하고 그대와 가까운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픈 감정에 매여 있다면 그대가 감히 세대의 지도자일 수 있는가?”(M.부버, 하시디즘과 현대인)

▨… 성대중(1732~1809)이 말했다. “이름은 뒷날을 기다리고, 이익은 남에게 미뤄라. 세상을 살아감은 나그네처럼 하되 벼슬에 있는 것은 손님같이 하라.” 성결인이 성결하다면 성총회되지 않을 리 없고 성총회의 결정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낼 리도 없다. 우리가 하늘의 시민권을 갖고 섬기는 자로 살 것을 주님 앞에 다짐했다면 그깟 이 땅에서의 벼슬(?)에는 초연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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