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기독교의 복음은 한마디로 사랑의 복음이다. 예수님은 사랑 그 자체인 사랑의 화신이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성육신 사건은 사랑 때문에 이루어 졌다.(요3:16)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계명은 사랑의 이중계명과 원수 사랑으로 요약 할 수 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사랑의 이중계명”을 말씀하였다. 예수님은 한 율법사가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큰 계명입니까?” 묻는 질문에 구약의 신명기 6장 5절과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을 가지고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4~40) 이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사랑과 이웃에 대한 인간의 윤리적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 사랑의 정신은 모든 계명을 실천하는 동기와 추진력이 된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롬 13:10) 성령의 첫 번째 열매다.(갈 5:22)

둘째, 예수님은 사랑의 이중계명의 말씀이외에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라”(마 5:44)는 말씀을 하였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다른 종교에서 찾아 볼 수 없는 기독교만의 독특한 계명이다. 본회퍼는 원수 사랑을 비범성이라고 하였다. 원수를 사랑함으로써 적대감을 극복하여 원수의 존재가 소멸되고, 원수를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여 이웃으로 만나는 창조적 사랑이 실천된다.

사랑의 종류에는 자연적 현상으로서 인간의 본능적 사랑,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신적·초월적사랑, 하나님에 대한 의무로서 인간의 종교적 사랑,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무로서 윤리적 사랑이 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여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선물인 동시에 우리에게 꼭 행해야 할 과제이다. 사랑은 직설법이자 동시에 명령법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직설법 형식의 선물은 동시에 하나님은 인류에게 “너희도 이와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법의 요구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을 동시에 명령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은 정의(正義)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불가분리의 관계이다. 정의는 사랑의 도구이며 사랑은 정의를 통하여 구체화된다. 라인홀드 니버는 정의 없는 사랑은 감상주의가 되고 사랑 없는 정의는 정의 이하가 된다고 하였다.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곧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기독교 사랑은 이기주의적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구체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이웃들에게 실천하는 것이다. 실천하는 사랑이 완전한 사랑이며 참된 사랑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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