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교회와 청주서문교회의 목회 활동

이중태 목사는 1954년 봄, 전담사역자의 길을 걷고자 홍은교회를 자원하여 부임했다. 15평 되는 집터만 있는 홍은교회에 부임하여 7~8평 되는 한 성도의 집 2층에서 예배를 드렸다. 매주 성도들이 늘어나서 집터 4개에 해당하는 50여 평의 대지를 확보하여 콘센트 막사를 세우고 헌당식을 가졌다. 그는 신앙이 어린 신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헌금하지 않아도 좋으니 교회만 잘 나오라고 얘기했지만 신자들은 잘 나오지 않고 교회가 부흥이 되지 않자 목회에 대한 의욕을 잃고 홍은교회를 사임했다.

그동안 고등학교 강사료로 생활을 했는데 그것마저 끊어져 생활이 어려웠다. 그는 이명직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홍은교회를 사임한 이유를 말했고 이명직 목사는  “헌금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이 성경 어디에 있소? 바치는 것이 신앙이야, 마음도 바치고 몸도 바치고 전부를 바치는 것이 신앙이야. 알겠는가?”라고 책망했다. 이 전도사는 잘못을 크게 뉘우쳤다. 그 후 아현교회에서 전도사 겸 성가지휘자로 봉직하게 되었다. 그는 담임목사 밑에서 열심히 배우고 일했다.

1959년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한 그는 청주서문교회의 전도사로 부임했다. 성가대를 강화하고 육성시켜 예배를 아름답게 드리도록 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아름답고 믿음으로 신앙을 고백하도록 교인을 이끌어갔다. 찬송공부시간을 마련하여 찬송의 해설을 들려주고 찬송을 가르쳐 성도들의 찬송수준을 높여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찬미의 제사를 드리도록 육성했다. 1년에 몇 번 씩 음악예배를 드리도록 했고 때로는 찬송가강습회, 찬송가경연대회 등을 개최했고 음악방송에도 힘을 썼다. 이리하여 서문교회가 찬양 면에서는 청주의 모든 교회보다 앞서갔다.

이 목사가 청주서문교회에서 음악활동에 재미가 붙어 사회적으로 치우치다보니 신자 중에 이 전도사의 설교는 은혜가 안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용문산에 올라가 장대비를 맞으며 “하나님, 말씀에 능력을 주옵소서!”라고 울부짖었다. 무아지경에 들어가 장대비가 쏟아지는 것도, 옷이 젖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도리어 온몸이 뜨겁고 기쁨이 솟구쳐 올랐다. 자신의 부족함을 하나하나 깨닫고 눈물로 고백했더니, 성도들에게 은혜를 공급할 수 있는 말씀증거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 성도들에 은혜 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가 줄줄 나왔다. 그러자 임마누엘의 확신이 생겨 기쁨으로 찬송을 부르며 하산했다.

이후 신자들이 이 전도사의 설교를 듣고 은혜 받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영적인 힘을 충전하기 위해서 20일 금식기도를 했고, 대천 성거산에서, 호랑이 세 마리 있다는 산에서, 마귀가 나온다는 굴속에서의 간절한 기도와 산상집회 등을 통해 각양 은사 체험과 하나님 임재체험으로 영력을 얻어 전심전력으로 목회에 임하고 부흥회를 인도했다.

그는 영력 있는 부흥사로서 한 동안 매주일 전국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다녔다. 그가 인도한 부흥집회가 무려 600여회에 이른다. 그는 부흥집회 중에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제압하여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었다. 부흥회를 찾아다니는 사기꾼을 따끔하게 경고했다. 그는 본 교회에서나 부흥회 석상에서 마땅히 가르쳐야 할 일은 가감하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담대히 가르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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