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앞당겨 사십시오! 아나스타시스 (anavstsis)
봄은 온 세상의 생명체들이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본색을 저마다 드러내니 그야말로 주님의 ‘아나스타시스’(부활)를 노래하기에 이보다 좋은 계절은 없을 듯하다.
유대인들의 부활사상은 바빌론 포로기 이후 문헌인 다니엘 12:1~3과 마카비 2서 7:1~29에 등장한다. 그러나 비단 고대 근동지방에만 이러한 부활신앙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활에 대한 고전적인 진술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의 왕 프리암은 죽은 자신의 아들이며 트로이군의 영웅인 헥토르를 애도하면서 슬픔에 잠기게 되자, 그리스군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애통해하지 말고 참고 기다리시오. 당신의 아들을 위하여 한탄하는 것은 결코 좋지 못하오. 그를 다시 살리기 전에, 당신이 먼저 죽겠소." 이러한 이야기는 그리스의 극작가들에 의해 전승되면서, 아이스킬로스(Aeschylus)의 <유메니데스>(Eumenides)에 나오는 아폴로는 아테네 최고 법정인 아레오바고(Areopagus)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일단 사람이 죽어서 먼지가 그의 피를 빨아들인 후에는 부활(anastasis)이란 없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의 죽음과 현현을 통한 부활신앙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교회는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예수께서 주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매주 일요일에 모여서 부활의 기쁨을 온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게르트 타이센(G. Theißen)이 말한 것처럼, “예수 부활 신앙은 지상의 예수, 그의 외침, 그의 선포를 지향한다. 그것들은 현재에 계속되며 현재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부활에 대한 전거는 신약성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고린도전서 15:3~5절이 대표적인 근거다. 부활을 의미하는 헬라어 동사 egeivrw(에게이로, 신약에 144번 등장)는 수동형(일으키다)과 능동형 두 가지 의미로 쓰이기도 하며, anivsthmi(아니스테미, 신약에 108번 등장)도 때에 따라서는 타동사(일으키다; 행 2,24, 32; 3:26; 13:33~34; 17:31)로 혹은 자동사(일어서다; 살전 4:14; 눅 24:7, 46)로 쓰인다.
사도 바울은 예수와 함께 부활(아나스타시스)이라는 단어를 너무 흔히 사용하였기 때문에 아테네 사람들은 마치 이집트 신화에서 오시리스(Osiris)의 배우자가 이시스(Isis)인 것처럼, 부활이이라는 신(고유명사)이 예수의 배우자인 것으로 착각을 하였다(행 17:18).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부활이란 ‘다시 살아나심’과 ‘올리워지심’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anavstsis”(아나스타시스)라는 헬라어 원어의 avnav라는 접두어는 “위에서" 혹은 “위에"라는 말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원래 부활은 현양(顯揚)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스 콘첼만(H. Conzelmann)이 주장하는 것처럼, “부활의 의미는 처음부터 예수가 천상의 신분을 얻게 되는 데 있다."
이렇듯 하나님에 의해서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고 하나님에 의해서 하늘의 신분을 얻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만물이 생명으로 가득 피어나는 봄과 닮았기에 교회력은 봄에 부활절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활을 교회절기의 하나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 부활은 우리 가운데서 매순간 일어나는 새 생명의 사건으로 인식해야 한다. 생명이 있는 한 우리는 부활의 생명에 동참하는 것이고, 그 생명의 사건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불실본색(不失本色)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자기의 본래 빛깔을 잃지 않는 것이다. 부활을 지금 여기에서 앞당겨 사는 사람이 바로 그 본색이 빛바래지 않는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은 자신의 저서 『논리철학논고』에서 “신비로운 것은 세상이 어떠하다는 게 아니라 세상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을 빌려 다시 부활을 노래해 본다면, 우리에게 신비로운 것은 부활이 어떠하다는 게 아니라, 부활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일 부활을 살자! 그것이야말로 지금 여기에서 예수의 아나스타시스를 맛보며 사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