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5년차 총회는 승합차 열 네 대가 그 위용을 뽐내는 바람에 모처럼 축제의 분위기 같은 것이 만들어졌었다. 총회장, 부총회장을 뽑는 일이 연례 행사여서 축제의 분위기는 당선 사례의 현수막에만 머물렀었다. 하기는 얼굴을 붉히고 핏대를 세우며 고함이나 질러대는 총회에 익숙해져버린 탓인지 총회가 축제라는 생각은 언감생심이었다.

▨… 상은 주는 쪽에서도 즐거운 일이겠지만 받는 쪽에서는 더더욱 기쁜 일이다. 이름만 상이 아니라 가난한 개척교회 형편에서는 눈이 튀어나올만큼 탐이나는 가격대의 승합차가 상품이라는데야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3년 전에 외상으로 산 승합차 값을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어느 작은 교회의 목사가 물었다. “상탄 승합차 양보한다는데 신청서라도 있나요?”

▨… 여섯 교회가 승합차를 양보했다. 전도의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었으니 부상인 승합차를 양보해도 기쁨은 두 배 세 배일 것이다. 아마도 가난한 개척교회에 양보하므로 얻은 기쁨은 덤의 은혜일 것이다. 해마다 이런 잔치가 계속될 수는 없는가. 승합차 한 대가 마련되어지기를 기도의 제목으로 삼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안다면 이 일은 누군가의 업적으로만 남아서는 안될 것이다.

▨… 승합차가 꼭 필요했지만, 전도를 누구보다 열심히 했지만 승합차란 상품은 애초에 꿈도 꿀 수 없었던 많은 교회들이 있다. 능력이 부족하고 열심이 모자란 탓이라 꾸짖지 말라. 사람을 찾기가 힘든 농어촌 교회도 있고 아무리 애써도 사람들이 얼씬거리기 조차 거절하는 지하상가교회도 있다. 그리고 승합차는 이런 교회일 수록 더 필요하다. 우리는 전도의 결과에 대해서도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으면 한다.

▨… “미국교회에는 수많은 부흥운동이 있으나 아직도 순수한 신앙의 개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디트리히 본회퍼가 지적한 적이 있다. 전도의 결과를 퍼센트로 계산하고 숫자로 표기하는 한, 지하상가교회에서 맞이한 초등학생 한 명은 영원히 잊혀진 한 마리 양일 수밖에 없다. 아흔 아홉과 하나가 같은 비중으로 셈하여지는 교단의 풍토는 도저히 불가능한가. 승합차 한 대와 초등학생 하나, 십자가의 그분이 웃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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