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독본의 4~6월은 십계명을 단원으로 했고 7~9월과 10~12월은 주로 성서의 인물을 배열했다.

십계명 단원에서는 십계명, 술 등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지키거나 금해야 할 중요한 덕목과 예절을 학습하도록 집필되었으며 성서의 인물로는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사무엘, 다니엘, 디모데, 다윗, 마리아 등 성경의 위인과 가인, 압살롬, 하만 등 실패한 성경의 인물을 취급했다. 죄가 두렵고, 선한 것이 좋은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부활절과 성탄절에는 학과의 앞뒤와 관계없이 그 절기에 해당하는 공과를 배열했다. 또한 당시 기독교가 국민계몽운동으로 펼친 금주운동을 주제로 술의 해독에 대한 성서의 교훈을 취급했다. 그리고 1년에 4회(3, 6, 9, 12월말) 3개월마다 복습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주일학교독본 권1’에 이어 ‘주일학교독본 권3’이 먼저 발행되었다. 발행된 날은 간기에 따르면 ‘주일학교독본 권1’과 같이 1929년 2월 25일이다. 그러나 활천 1929년 12월호에 낸 출간광고를 미루어보아 1929년 2월 25일에 발간하지 못했다. 권2보다 권3이 먼저 발행 된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원고작성이 늦었는지, 인쇄사정이 좋지 않았는지, 아니면 조선총독부의 검열에 걸렸는지 ‘주일학교독본 권2’보다 먼저 나온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그 당시 많은 출판물들이 일제의 출판물 검열에 걸려서 실제의 간기의 발행일보다 늦어졌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침략자 일본은 3·1운동을 일으킨 책임을 물어 조선총독을 사이또(齊藤實)로 교체했다. 사이또 총독은 지난 10년간의 조선식민지통치 때 써먹던 무단정치의 방법을 바꾸어 문화정치를 표방했다. 10여년간 학술적, 종교적 집회 외에는 허가하지 않았고 신문 잡지도 허가하지 않았던 야만적인 통치의 방식을 바꾸어 완화한 것이다.

3.1운동은 더 이상의 무단통치가 식민통치의 위험도를 높이고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문화정치로 인해 조선인의 언론출판 등의 자유의 문이 조금 열려졌고 조선의 지식층은 이때를 이용하여 언론 출판을 부활시켜 부흥케 했다.

192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을 했고, ‘개벽’ ‘신천지’ 잡지가 1920년과 1921년에 창간되었다. 1920년부터 1929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의 손에 의해 창간된 잡지가 200여종에 이른다. 그러나 사이또 총독은 문화정치를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은 무단정치 때 만든 출판허가제를 그대로 실시하여 출판발행을 어렵게 했다. 출판에 앞서 원고의 검열이 통과된 원고만 출판에 붙여야했고 그들의 허가없이 출판물을 발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일본경찰과 조선총독부의 원고검열과 발행 배부가 허가 검열에 걸려 글 내용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다가 제때에 발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러지 않은 것 보다 많았다. 검열에 걸렸을 경우 그 이유를 일체 밝힐 수 없는 것이 검열의 법이었다.

‘주일학교독본 권3’ 역시 크게 4개의 단원의 교과과정으로 되어 있다. 이 ‘주일학교독본 권3’은 창세기를 중심으로 저작한 것이다. 인류의 원시역사(原始歷史)인 창세기를 흥미롭게 저술했다. 모든 것의 기원(Origin)으로서 창조의 사건과 죄의 기원, 가정의 기원, 인류의 기원, 종족의 발전 그리고 선택된 백성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시작 등 모든 것들의 기원을 알려주고 있다.  
    <계속>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