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일은 성공과 실패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는 실패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는 실패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성공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커지고 많은 부요를 쌓았다고 해서 성공이라고 말한다면 참으로 오산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역이든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감격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는 잣대와 하나님이 보시는 잣대는 다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지극히 작을 것일지라도 귀할 수가 있다. 그것은 작은 한 영혼이 세상을 변화 시키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의 변화된 삶 속에는 무한한 가능성인 하나님의 가능성이 그 사람의 내면에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의 한 조그마한 교회의 목사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모아서 어린 학생들을 열심히 양육했다. 그때 공부했던 학생들 가운데에서 12명이 목회자가 되었고 한국과 미국에서 하나님의 엄청난 사역들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오늘 내가 돌보는 한 영혼이 미래를 변화시킬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한 것이다. 쇠한 것 같으나 흥하게 되고 불행한 것 같으나 행복한 것이다. 없는 것 같으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일에는 실패란 없다.

하나님의 일에는 실패가 없는 것처럼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결코 실패란 없다. 실패는 다 세상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느냐 이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생각을 바꾸면 길이 열리고 삶의 질이 높아진다. 환경과 여건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 가운데에서도 감사를 선택하고 성공지향적 보다는 보람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보람을 느낄 때에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남들은 다 실패라고 여겨지는 그 어떤 사건이나 일들에 대해서 낙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행복은 선택이다. 성공과 실패란 개념도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열면 세상이 보이고 사람들이 보이고 귀함을 느끼고 가치를 느끼고 참 보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삶이다. 믿음은 철저히 내 안에서 긍정적인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바라는 것이 현실에 다 이루어지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바로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그것, 불행하다고 느끼는 그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다. 거기서 유하게 되는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너희가 자유케 되리라.” 자유케 된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힘이다. 무엇인가에 얽매인 삶이 아니라 그 어떤 세상이 정한 고착화된 관념으로부터 진정 벗어나는 것이 자유이다.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낙원, 에덴을 되찾는 것이다. 어떠한 부끄럼도 없는 진정한 삶의 기쁨이 있는 그것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양심에 의해서 정해진 규칙이 없는, 본회퍼가 이야기한 “양심은 결국 근원을 잃어버린 존재에서 나타나는 것이기에 선할 수 없다”는 것을 되새김하면서 이해되어지는 회복을 의미한다.

즉 개혁신앙의 근본인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기억하면서 근원으로의 회귀, 그것이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에 나에 대한 가치는 ‘나’라는 인간에 의한 가치가 아니라 나를 만드신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가치이기에 귀한 것이고, 이 세상에서 나타나 보이는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간에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이 진정 믿는 자의 삶이다. 오늘 우리가 진정 믿음 안에 있다면 그 자체로 귀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는 결코 실패란 없다. 그리고 믿은 자에게 또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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