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의 선택’. 미국의 루이지애나주는 중부지역 일대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미시시피강이 범람할 위기를 맞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내려진 결론은 미시시피강 인근 대도시와 정유시설의 막대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 물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당연히 전혀 홍수 피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농어촌 지역이 침수 피해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이 결정을 언론은 ‘악마의 선택’이라고 이름지었다.

▨… ‘당신은 기차 기관사이고 철로를 질주하고 있다. 저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일을 하고 있다. 기차를 멈추기에는 너무 늦었다. 브레이크도 작동되지 않는다. 오른 쪽에는 비상 철로가 있다. 그곳에도 인부가 일하고 있지만 한 명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마이클 샌델·정의란 무엇인가) 다섯을 구한다는 명분이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였을 때 과연 도덕적일 수 있느냐고 샌델은 묻고 있다.

▨… 물길을 돌려야 하는 루이지애나주의 결정에 대해서 언론은 왜 ‘악마의 선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을까. 그 행위로 엉뚱한 날벼락을 맞는 사람들의 위치에서 바라보려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행위에 대한 도덕성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까. 우리는 흔히 큰 것을 위한 작은 것의 희생을 당연시하며 정의롭게 여기도록 길들여져 왔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정의라면 나부터 자기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다시 총회를 맞는다. 새 총회장과 부총회장, 총무를 선택하고 임원진을 구성한다. 성결인들이 정·부총회장과 총무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가장 영적인 사람을 뽑자는 것인가, 가장 도덕적인 사람을 뽑자는 것인가, 아니면 정의나 인격이 선택의 기준인가. 라인홀드 니버가 “선거란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이미 선거가 ‘악마의 선택’일 수 밖에 없음을 간파했던 게 아닐까.

▨… A목사, L목사 저들의 인격과 성결인다움을 많은 성결교회 목사들은 사랑하고 존경했었다. 그러나 저들은 총회장에 입후보하기를 주변에서 권면하여도 한사코 사양했었다. 총회장의 직무가 중요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맞지 않는 옷을 사양하는 것만이 선거가 악마의 선택이 되는 길을 막을 방법이라는 생각은 너무도 순진한 발상인가.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