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진정성이 도전받는 배후에는 언제나 구원의 표상에 대한 불확실한 이해가 있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한국교회를 부끄럽게 만드는 몇몇 대형교회들의 비리와 추문, 명예를 실추시키는 고소 고발들은 한국교회의 구원이해가 잘못되어 있다는 경고등이라 할 수 있다.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구원받은 상태로 말하고 있으며, 어디로부터 구원받은 것이라고 알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는가? 혹시 현실에서의 평안과 육신적 미래의 보장이 구원이라는 가정을 갖고 있지 않는가? 우리들 모두가 당연시 하는 영혼의 구원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구원에 대한 다양한 표상들은 모두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맞물려 있다. 혹시 우리 가운데 구원에 대한 불분명한 이해가 있다면 이는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충분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위험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역사를 체험하였던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무엇이라 이해하고 있었는가? 성서 말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주신다고 믿었다. 죄의 결과로서 얻어진 인간 존재의 왜곡된 변형과 그 최후 결과인 죽음의 심판에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의 삶이 예수의 순종적 삶 가운데 예표로 제시되었기에 우리가 예수의 삶을 모범으로 삼아 하나님을 이 지구상에서 닮아 갈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다. 예수의 지상의 삶은 하나님의 삶을 전달하는 교육적 효과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제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대속의 은총이 실현되는 구원의 정점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모든 죄책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부활의 은총은 우리에게 지상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이어받을 수 있게 되는 새로운 계기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에게 마귀와 우리의 죄에 대한 대속적인 속량의 대가로서 주어졌다면 그 회복으로서의 부활의 은총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의 계기를 허락하셔서 온 인류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는 구체적인 화목의 사건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초대교회는 소위 Theosis(테오시스, 神化)라는 매우 적극적인 체험을 주장하게 된다. 이 개념은 저 유명한 부정신학자인 Peudo-Dionysius von Areopagita로부터 많이 유행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이전에는 Gregory von Nazianus가 단 1회 사용하고 Clemensvon Alexandria가 Theopoiesis(테오포이에시스)라는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테오시스가 갖는 의미는 그 단어가 나타내듯이 인간이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존재로 변형되어 가는 통합의 과정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비록 성서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었고(벧후 1장 4절: “…너희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함이라.”) 많은 교부들이 이 주장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구원론의 근거로서 사용하고 있었지만 역사에서 볼 때 서방에서는 점차 양자됨, 혹은 신생 등의 개념으로 대치되는 것을 보게 되고 결국에는 Participatio(파티치파치오:참여)의 개념으로 변형되어 ‘본성의 변화’가 아닌 ‘신적 본성에의 참여’정도로 이해되게 된다. 그리고 난 후에는 그 테오시스라는 개념은 서방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아마도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된 인간의 모습을 다른 영지주의적 체험(신과 인간의 중간적 존재가 갖는 신인합일)과 구분되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즉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고 손 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에 대한 생각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동방교회에서는 이 개념이 ‘하나님으로 되돌아감’ 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후에 14세기쯤 팔라마스(Palamas)에 의하여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동에 참여하게 된다는 개념으로 정리되어 사용하게 된다. 이 테오시스를 여기에서 다루게 된 것은 이 개념이 우리의 성결교회의 성결체험의 바탕으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벗어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에 참여하게 되는 적극적인 제2의 은사도 포함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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