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논란 후에 드디어 교회는 425년 칼케돈회의에서 그리스도의 인간성에 대한 정통적 견해를 마련하였다. 그 당시 시대는 인간의 본질적 요소로서 영혼, 육의 관념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그 기반을 전제로 어떻게 인간 예수의 영혼, 육의 요소가 신적 로고스와 더불어 이해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본 패러다임을 마련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를 인간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발견해야 할 그의 정신과 영성이 예수의 또 다른 기원인 신적 로고스와 어떤 관계인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질문에 답변이 주어진 것이다. 예수의 신적 기원인 로고스가 예수라는 한 역사적 인간에게 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때 그가 지니고 있어야 할 영혼의 위치는 어떻게 되는가?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었고 그 과제에 대한 답변이 주어진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라는 양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두 본성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되는 고유한 존재방식으로 한 통일적 인격을 이루었다고 하는 지극히 상식적이며 형식적인 답변을 하게 된다.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 양성 ‘안에서(in)’ 그리스도가 존재하며, 양성의 존재방식은 ‘서로 섞이지 않으면서 서로 분리되지 않고, 서로에게 변화되지도 않으면서(이 말은 변화시키지도 변화 받지도 않는다는 것) 서로에게 고립된 채로 남아있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양성의 존재방식에 대한 교회의 주장은 후에 신, 인성의 ‘본성들의 교류론(communicatio idiomatum)’으로 발전되게 되고 드디어Anhypotasie(안히포타지, 신성이 없으면 인성도 없다)-Enhypotasie(엔히포타지-신성이 있으면 인성도 있다)라는 두 쌍의 대립항을 통하여 예수의 인간성에 대한 답변을 최후로 완성하게 된다.

아직도 이견이 남아있고 모든 의견이 완전히 수렴된 것은 아니었지만 칼케톤 회의의 결과는 당시 기독론에 대한 토론에서 서로 대립하면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던 교회 내 안디옥 학파(Logos-Anthropos 기독론)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장(Logos-Sarx-기독론)들 사이에서 타협을 모색한 결과였다. 당시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면서 로고스가 바로 예수의 인간성의 자리, 그것도 그의 영혼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고 설명한 반면, 안디옥 학파는 하나님의 의지가  예수의 인간성과 더불어 함께 공존하는 것이 바로 신·인성의 통일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교회의 정통 기독론 발전에서 주목해야 할 관점은 다름 아니라 교회가 이 칼케돈의 입장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더 발전해서 본성들의 교류와 Anhypotasie-Enhypotasie의 새로운 입장을 설명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Anhypotasie-Enhypotasie의 논증은 매우 흥미로운데, 이는 인간 예수의 인간성을 철저하게 신성의 부여로부터 함께 생각하는 계시중심의 새로운 논증일수 있다는 점이다. 즉 이전의 모든 기독론의 논의는 미리 주어져 있는 영혼과 몸을 요소로 하는 인간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였다. 이 보편적인 전제에 인간 예수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신적 로고스의 출현은 이 보편적인 전제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는 점을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제 Anhypotasie-Enhypotasie의 논술에 의거하여 전환이 일어난다. 보편적인 인간을 기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 신적 로고스를 받은 인간 예수의 인간성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Anhypotasi는 예수가 스스로 홀로 인격이 될 수 없는 상태를 나타내고 Enhypotasie는 로고스의 출현으로 인해서 비로소 그의 인격성이 등장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즉 하나님이 오심으로서 비로소 예수의 인간성이 형성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오늘날 우리의 인간이해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즉 우리가 스스로 어떤 인격적 완성도나 스스로의 기준에 의하여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령이 임하시므로 우리가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효과가 여기 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이러저러한 철학을 통하여 스스로 온전한 인간,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칼케돈의 기독론은 우리에게 참된 인간이 되는 길을 이미 보여주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으로만 참된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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