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대의 독일은 나라 경제의 파탄으로 국민 모두가 절망 속으로 잦아들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의 결과로 떠안아야만 했던 나라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마르크화는 휴지나 다름없는 사태가 빚어졌다. 경제의 몰락은 게르만의 자긍심까지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그 상황 속에서 외쳤다. “나를 따르라. 묻지 말고 그저 따르면 내가 독일을 구출하겠다.”

▨… 상황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은 나쁜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둔갑시킨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저들에게는 진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영민함, 결단성, 추진력은 아돌프 히틀러를 단숨에 게르만의 지도자가 되게 하였다. 그에게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태인을 처형하는 복음의 사도로 자신을 위장하는 기술까지 있었다.

▨… 복음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는 한 세기 동안 기업인의 부가 탐나서 복음의 사자를 위장한 이들이 있었다. 교육가의 명예가 탐나서 복음의 일꾼이라는 탈로 자신을 가리었던 이들도 있었다. 세상 사람들의 존경이 탐나서 복음이라는 색깔로 사회사업을 이뤄내려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나를 따르면 개인이 구원되고, 교단이 구원되고, 한국교회가 구원된다고 외쳐댔던 사람들이다.

▨… 나를 따르라는 외침이 성전에서 발원한 물줄기처럼 교단을 관통하는 계절이 다가왔다. 대의원들의 휴대폰에는 그 외침이 넘치고 넘쳐날 것이다. 이쯤에서 한번 묻고 싶다.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이들의 발걸음은 골고다를 향하는 예수를 목표로 하고 있는가, 복음의 사도를 위장한 히틀러를 목표로 하고 있는가. NCC와 한기총, 여의도가 목표하는 길과, 성결교회의 목표하는 길은 다르다고 믿고 싶다.

▨… 본회퍼 목사는 ‘교회의 죄’를 가차 없이 고발했었다. 부활의 주님을 맞기 위해서는 회개가 무엇보다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죄 없는 사람들의 외침이 하늘에 이르도록 교회는 침묵했습니다. …교회는 세상 앞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끄럽게 여겼고, 악한 목적을 위해 예수의 이름이 오용되는 것에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예수의 이름을 빙자한 폭력과 불의를 방관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맞기 위한 우리의 회개는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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