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다 아는 것이지만 이 말씀은 산상수훈에서 주님이 들려주셨다. 기독교는 이 명령을 기본적 윤리 규범으로 지켜왔으며 기독교가 그 중심 내용이었던 서구문화는 이 명령을 황금율로 이해하였다. 이 황금율은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양보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그리고 거부할 수도 없는 절대적 윤리 규범이다.

▨… 마이클 샌델(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 때문에 황금율은 정언적 명령(어떤 행동이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면, 따라서 이성에 부합하는 의지에 꼭 필요하다면 그 때에 주어지는 명령)일 수 없다고 말하였지만, 인간성을 보편적인 범주에서 이해하는 한 황금율은 우리의 삶에서 여전히 포기되어져서는 안되는 행동의 준칙이다.

▨… 교단이 온통 부풀려진 말, 색칠한 말, 꼬리가 잘려진 말들로 넘쳐난다. 이러다가는 교단이 죽었다거나 썩어버렸다는 극한적인 말까지 마구 튀어나올까 두려워진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이라도 할텐데 진실이 일부 포함된 말로 교묘하게 포장하니 듣는 사람들, 읽는 사람들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왜곡 또는 조작하는 말들의 행간을 읽어내는 기술을 따로 교육받아야 하는 것일까.

▨… 본회퍼 목사의 명상을 한번 음미해보자. “악한 행동보다 더 악한 것은 악한 존재다. 거짓말쟁이가 진리를 말하는 것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속이는 것보다 훨씬 더 사악하다.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번쯤 증오심에 사로잡히는 것보다 더 사악한 것은 인간을 증오하는 사람이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이다. 거짓말쟁이의 입에 있는 진리보다도 차라리 속이는 것이 낫고 인간의 적이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보다 차라리 증오가 낫다.”

▨… 교단을 사랑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손해본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있는 ‘교단을 위해서’라는 말에 현혹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교단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작태는 또 얼마나 벌어질까? 약간의 진실을 담은 거짓이 아무렇지도 않게 교단을 혼란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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