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유머 감각이 풍부하여 가끔씩 웃기기도 하셨을 것인데 성경에 단 한 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눈물을 흘리시며 탄식하셨다는 말씀과 흐느끼며 우셨다는 말씀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때, 어디서 우셨고, 왜 우셔야 했습니까?
베다니라는 동네에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삼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삼남매는 예수님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섬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집의 가장 역할을 하던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셔서 흐느껴 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소리 내어 우실 때, 그 울음소리와 뺨에 흐르는 눈물은 오빠를 잃은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아주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참하고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보실 때, 마음이 아프셔서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울음은 동정과 위로의 울음이며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큰 감동을 받아 함께 울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우심으로 다른 사람들도 울리셨습니다.
또 한 번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한탄하시면서 우셨습니다. (눅 19:41~44)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앞으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될 것을 내다보시고 안타까워하신 말씀입니다. 불과 30여년 후에 멸망이 다가오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살 길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탄식하신 것입니다. 미래의 일을 내다보지 못하고 그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없이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며 우십니다. 이 울음은 탄식의 울음입니다.
운다는 것은 마음의 가장 깊은 밑바닥을 드러내는 진실한 감정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우셨다는 것은 진심으로 동정하시고, 위로의 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는 사람과 함께 울어주시는 분입니다.
지금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은 온 국민이 슬픔에 젖어있습니다. 3월 11일 진도 9.0의 강진으로 말미암아 쓰나미가 일어나서 약 2만여 명이 생명을 잃고, 20여만명이 재해를 입을 것이며 그 피해액은 300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소 문제로, 방사능 유출로 인한 공포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구며,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누구며, 울지 않을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비록 일본사람들은 겉으로는 침착해보여도 속은 타들어가고 더욱 슬프게 흐느끼며 울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 재난의 현장에는 예수님이 찾아오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원래 고통 하는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찾아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수만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그 가족들이 망연자실한 그 현장에 계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흐느껴 울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까지나 울고만 계시지는 않으십니다. 오빠를 잃고 울고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이제는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울지 않는 환경, 오히려 웃을 수 있는 환경을 다시 만들어주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러시더니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셨습니다. 정말로 울지 않고 웃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또 눅 7:11~17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나인’이라는 동네에 젊어서 과부가 된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들이 하나 있어서 이 아들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모든 고생을 다해가며 살았습니다. 고생한 보람으로 이 아들은 이제 직업을 갖고 어머니를 받들어 모실만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이 아들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이 여인이 가졌던 모든 희망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 슬픔은 극에 도달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슬퍼하며 청년의 관을 메고 장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그 장례행렬과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슬프게 울고 있는 그 과부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몹시 불쌍하게 여기시고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이 누워 있는 관에 손을 얹으시더니 ‘청년아 일어나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곧 청년이 살아나서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살아난 청년을 그의 어머니에게 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울고 있는 사람을 찾아오셔서 함께 우시며 또 울고 있는 사람에게 이제는 울지 말라고 하십니다. 울어본 사람이 우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셨고, 울지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말로만의 위로가 아니라 정말로 울지 않고 웃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이번 지진의 피해가 우리나라에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은 일본 열도가 방패역할을 해서 지진파와 쓰나미를 막아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감사해야 하지만 그러나 먼저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웃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울지 말라고 위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였듯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