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1:6~14)
몇 년전 명절을 앞 두고 모 집사님이 명절 선물을 들고 찾아오셨습니다. 명절마다 챙길 곳도 많고 들어갈 돈도 많을 텐데 주의 종이라 생각하고 기억해주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아이가 다니는 학원선생님에게는 백화점에 가서 아주 비싼 명품 물건을 사다가 드렸다’는 것입니다. 순간 ‘힘들면 선물 안 해도 되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주의 종을 아이가 다니는 학원선생님만큼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펐습니다. 체면 때문에 하는 선물은 선물이 아닙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불쾌해 하시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불쾌하게 생각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공경하고 종은 주인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절기때 마다 하나님께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하나님을 멸시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멸시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멸시했다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배에 정성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7절에 그들은 하나님께 더러운 떡을 드렸다고 나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에 정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두려워할 줄 모르면 제일 먼저 정성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배는 정성을 다해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공경과 두려움이 사라지면 예배에 정성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면 예배에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은 정성없는 예배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게 바치는 제물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고 말합니다. 10절에는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정성없는 예배는 의식만 있고 마음은 없는 예배입니다.
정성없는 예배는 습관적인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차라리 누군가가 성전 문을 걸어 잠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귀하게 여긴다면 예배를 소중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습관적인 예배가 아니라 의식만 있는 예배, 때우기식 예배가 아니라 온맘다해 드리는 예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멸시했다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편하고 간단한 것만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13절에는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여 코웃음 치고 훔친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내가 너희 손에서 그것을 받겠느냐”라며 안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번거로운고”라는 말은 귀찮다는 것입니다. 짐승도 사서 예배합니다. 그런데 될 수 있으면 돈을 안들이고 예배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린 것입니다.
예배가 귀찮치 않으십니까? 전도하러 나오는 것이 귀찮습니까? 기도생활하는 것이 귀찮습니까? 봉사하는 것이 귀찮습니까? 교회가 멀어서 교회 나오는 것이 번거롭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영적으로 심각한 상황임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편한 것 좋아하지 마십시오. 그게 바로 영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김에 잔꾀를 부리지 마십시오. 아무런 부담감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좀 불편하고 부담이 되는 것이 은혜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우직하게 섬겨야 합니다. 잔 머리로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과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우직하게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인,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릴 수 있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